[엔터온뉴스 윤효진 기자] 한국 코미디의 산증인인 코미디언 故구봉서가 27일 새벽 1시 59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1926년 북한 평안에서 태어난 구봉서는 1945년 태평양가극단에서 아코디언 연주자 생활을 시작하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1961년 배삼룡과 콤비를 이루며 희극에 데뷔했다.
구봉서는 영화 ‘애정파도’(1956년), ‘눈 내리는 밤’(1958년), ‘구봉서의 벼락부자’(1961년), ‘운수대통’(1975년) 등 4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1958년 출연한 ‘오부자’에서 막둥이 역할을 맡은 구봉서는 공전의 히트를 치며 이름을 알렸다. 영화뿐만 아니라 980편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한국 코미디계를 이끌었다.
특히 그의 유행어인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를 탄생시킨 ‘웃으면 복이 와요’는 구봉서가 1969년부터 1985년까지 무려 15년 8개월 동안 출연한 작품으로, 70~80년대 국민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안겨줬다.
웃음뿐만 아니라 구봉서는 단순한 개그만이 아닌 세태를 풍자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국민을 대변하기도 했다. 1963년 동아방송 개국 프로그램 ‘안녕하십니까? 구봉서입니다’는 구봉서 홀로 5분 동안 하는 원맨쇼로 ‘이거 되겠습니까? 이거 안 됩니다“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구봉서는 1987년 문화포장, 1992년 옥관문화훈장(4등급), 2000년 MBC 코미디언부문 명예의 전당, 2006년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 2013년 은관문화훈장(2등급)을 수상했다.
인생의 전부를 한국 코미디에 바친 구봉서는 故곽규석, 故배삼룡, 故서영춘, 김희갑 등과 함께 코미디의 대부로 꼽힌다. 이들은 후배 코미디언에게도 존경하는 스승이자, 선배로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5년 전 포털사이트 네이버캐스트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구봉서는 코미디언이 되고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에 대해 “‘아이고, 눈물 나게 웃어봤습니다’란 말이 저는 가장 듣기 좋아요. 한국의 코미디언은 한국인의 수명을 늘려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웃음은 울적한 사람, 심심한 사람, 피로에 지친 사람, 화가 잔뜩 나 있는 사람의 기분을 돌려놓을 수 있거든요”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사람들이 구봉서를 떠올리며, 그래 옛날에 구봉서가 있었지, 그 사람 코미디할 때 좋았어, 지금은 살았나 죽었나, 그래주면 고맙고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구봉서와 함께 울고 웃었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있다. 우연찮게도 그가 세상을 떠난 당일, 부산에서는 그의 연기를 보며 코미디언의 꿈을 키운 후배 코미디언들이 ‘부산 코미디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송해, 김준호를 비롯해 이경규, 김영철, 오나미 등의 코미디언들은 구봉서의 별세 소식에 모두 비통함을 금치 못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 참여한 코미디언들은 구봉서를 추억하는 추모 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또한 공연이 마치는대로 서울로 올라와 조문할 계획이다.
현재 반포동 성모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코미디언뿐만 아니라 연예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방송코미디언협회의 회장 엄용수를 비롯해 최병서, 서수남, 이용식 등이 그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구봉서의 발인은 29일 오전 6시다.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 마련된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윤효진 기자 yunhj@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