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인터뷰] ‘덕혜옹주’ 박해일, 여백으로 관객의 마음을 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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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현우 기자 / 글 : 이주희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영화 ‘덕혜옹주’에서 박해일은 덕혜옹주를 평생 지키는 독립운동가 김장한 역을 맡았다. 장한은 덕혜옹주가 강제로 고국을 떠나 일본으로 끌려갔던 때의 모습을 기억하는 인물이며, 해방 이후 모두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를 잊었을 때에도 그를 잊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힘을 쓰는 인물이다.

마지막 황녀를 위해 평생을 바친다는 것. 현재의 우리가 생각했을 때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지점이다. 게다가 덕혜옹주와 김장한 모두 실존인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설정은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 것은 덕혜와 장한이 어린 시절 약혼을 할 뻔 했다는 하나의 사실이었다. 지켜지지 않았던 약속으로 김장한이란 캐릭터가 태어났고, 박해일은 실존인물과 허구의 인물 사이에서 캐릭터를 표현해야 했다.

“덕혜옹주라는 인물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까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김장한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도 점차적으로 커지더라. 김장한은 자료가 많지 않은 인물이라 영화적으로 살을 붙여나가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준비 기간이 꽤 길었다. 그 시대에 대해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를 나눴고, 김장한 캐릭터를 어떻게 진행해 나갈 것인지 고민 했다. 촬영하는 기간도 좋았지만 준비하는 기간도 흥미로웠다.”

“김장한스러움은 뭘까. 왜 덕혜옹주를 위해 평생을 바쳤을까란 고민을 했다. 나무로 치면 그게 뿌리다. 뿌리가 서야지 나무가 자라듯 나에게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뿌리는 어린 시절 장한이 덕혜옹주의 약혼자가 될 뻔했다는 한 문장이었다. 게다가 덕혜옹주는 힘없는 나라의 옹주로 태어나 자유를 빼앗긴 채 일본에 가서 감금을 당하는 등 엄청나게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았다. 이건 목숨을 걸만한 이야기다. 김장한의 또 하나의 콘셉트가 독립운동가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럴만하다고 생각했고 드라마에 뛰어들었다.”

‘덕혜옹주’는 본격적인 멜로물이 아니지만 장한과 덕혜옹주는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감정을 주고받으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허진호 감독은 둘의 관계를 로맨스에 치중하지 않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지점만 이야기 한 채 여백을 남겨두었다.

“감독님과 멜로 부분에 대해서는 상의를 많이 하지 않았다. 감독님의 전작에서도 알 수 있지만, 감독님은 남녀, 그리고 꼭 남녀가 아니더라도 인물과 인물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미묘하게 푸는 것이 독특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이 초반엔 내게 숙제였다. 시대라는 캐릭터가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인데, 옹주님이라는 신분도 있고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있었다. 손예진과 감안하면서 연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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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현우 기자

이번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배우들의 노역이다. 그중 박해일의 노역은 어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익숙하기까지 하다. 앞서 30대 중반의 나이에 영화 ‘은교’를 통해 70대로 분했던 그는 이제 ‘노역 장인’이라 불릴 만하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노역을 소화해야 하는 텍스트가 있었다. 거부감이 있으면 멈췄어야 했는데 대본에 계속 빨려 들어갔다. 노역은 이전에 제대로 경험해봤기 때문에 낯설지 않을 수 있었다. 심지어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노역은 배우로서 나이대를 확장할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한 느낌이다. 다듬어서 잘 활용해 보자 싶었다. 노하우가 있다면 내가 해봤기 때문에 분장을 잘 지울 수 있고, 마인드 콘트롤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역을 하면 사람이 긴장되고 공포감도 생길 수 있는데 나는 낯섦을 빨리 지워낼 수 있었다. 하지만 배우라면 노역이라는 무기를 쓰는 것보다 감정으로 보여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박해일은 청년부터 노인까지 나이대 폭만 큰 것이 아니라 ‘국화꽃 향기’ 같은 멜로부터 ‘짐승의 끝’ 같은 미스터리 스릴러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줄 아는 배우다. 최근 주목받았던 그의 올곧은 성격처럼 바른 모습만 있는 것 같다가도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한다.

“하나의 작품을 선택하는 것은 배우가 시작부터 끝까지 버텨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생길 수 있을 만한 작품을 고를 때다. ‘국화꽃 향기’나 ‘짐승의 끝’은 색깔이 아주 다르고 결코 쉬운 캐릭터가 아니었다. 자신 있어서 도전한 것도 아니었으며, 다양한 캐릭터를 하는 것은 강력한 호기심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