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백융희 기자] 구태우는 시인이자 작사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슈퍼주니어 D&E의 '브레이킹 업(Breaking Up)'으로 데뷔했다. 이후 MBC 드라마 OST '사랑한다 미안해', 레드벨벳 '오 보이(Oh boy)', V.O.S '나의 멜로디', 루나 '브리드(Breathe)' 등을 작사했으며 현재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스펙트럼을 구축하고 있다.
Q. 자기소개를 한다면?
“저는 2014년도에 구현우라는 필명으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을 했어요. 그리고 2015년에 슈퍼주니어 D&E의 ‘브레이킹 ’이란 노래로 작사가로 데뷔를 해서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작사를 꿈꾸게 된 이유?
“고등학생 때 밴드에서 베이스를 맡으면서 점점 욕심이 커졌어요. 이후 각자의 일로 어쩔 수 없이 해체를 하게 됐는데 음악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인터넷에 작사로 검색을 해보니 때마침 학원이 하나 생겨서 다니면서 작사를 배우다가 일을 시작하게 된 케이스에요. 시를 쓰는 시인이니까 가사를 쓴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시작점은 음악을 좋아해서 작사를 하게 됐죠.”
Q.처음 작사가로 데뷔할 수 있었던 계기는?
“1년 정도 학원을 다닌 후 받았던 곡 중 한 곡이 '픽스(fix)' 됐어요. 밴드 할 때도 외국 음악 위주로 들었고 아이돌 음악을 전혀 접하진 않아서 아이돌 음악을 작사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발라드나 R&B 곡을 할 줄 알았죠. 하지만 학원을 다니면서 주로 아이돌 음악을 작업해야 한다는 걸 알고 내가 모르는, 장르는 다르지만 좋아하고 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해 전혀 공부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웬만한 가수들을 1집부터 찾아서 분석을 했어요. 이 가수는 어떤 패턴이 있고 저 가수는 뭘 선호하는지, 다음 앨범에서 어떤 콘셉트나 어떤 이미지를 가수나 회사에서 원할 것인지 그런 걸 연구했어요. 저는 감만으로 가사를 쓴다는 건 별로 믿지 않아요. 사실 감성은 키워진다고 믿어요. 많이 듣거나 보아도 늘 수 있고 어휘나 문장도 많이 연습하면 늘게 되어있어요.”
Q. 가사를 쓰는 작업 방식은?
“일단 노래를 틀어놓고 계속 들어요. 그리고 곡의 구조를 외우는 데 하루 이틀 이상 시간을 써요. 곡을 끄고도 리듬을 흥얼거릴 수 있을 때까지는 한 글자도 쓰지 않아요. 그 다음 가수의 이미지, 가수의 특징 등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가사를 쓸 때 일단 콘셉트가 나오면 무엇보다 신경을 쓰는 건 발음이에요. 끊임없이 불러보고 들어봐야 해요. 가이드가 갖고 있는 발음과 최대한 비슷한 말들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도 최대한 부르는 데 무리가 없는 발음을 가지고 오려고 해요. 가사를 다 쓴 뒤에는 객관화가 될 때까지 보지 않아요. 그게 된 다음에야 불러보며 고친 뒤 마감을 하고 안 된다면 마감 전에야 다시 불러보면서 수정 작업을 해요.”
Q. 가사를 쓸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중요한 것들은 정말 많아요. 하지만 작사가가 쓴 가사라면 가이드를 모르는 사람이 처음 들어보며 보더라도 자연스레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합이 잘 맞아야 해요. 가이드는 주로 영어로 돼 있는데, 이를테면 스트릿(Street)이란 단어가 스! 트! 릿! 해서 세 글자일 수도 있지만 어떤 노래에서는 스트 릿 해서 두 글자일 수도 있어요. 'the'나 ‘a'를 호흡하는 순간이라 보고 넘어가기도 하는데 꼼꼼히 들어봐야 돼요. 사소할 수도 있지만 결코 사소한 차이가 아니에요. 가이드가 갖고 있는 분위기나 감정선을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되니까요. 가이드에는 작곡가의 의도가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 안에 감춰져 있는 뉘앙스를 되도록 살려줘야 한다고 봐요. 한 곡에서 작곡가의 역할이 캔버스 위에 스케치를 하는 거라면 작사가의 역할은 그 위에 물감으로 색을 넣는 일이 아닐까요. 작사가가 멋대로 이미 그려진 선(선율)을 벗어나서는 안 되는 거죠.”
Q. 가사는 탄탄한 스토리가 필요하다?
“시가 작사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어떻게 보면 하나의 가사는 한 편의 소설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해요. 물론 시에도 기승전결이 있지만 가사는 소설적인 기승전결을 따라 진행된다고 봐야할 거예요. 전부가 그렇다는 건 아니에요. 벌스-프리코러스-사비-브릿지 등을 통해 진행되는 방식은 차라리 시보다는 소설의 흐름과 유사하다는 거죠. 다만 시적인 요소가 있다면 이 스토리를 정해진 자수에 함축적으로 담아내야 한다는 점 정도고요.”
Q. 작업을 하면서 잘 맞았던 곡은?
“레드벨벳의 ‘오보이’라는 곡이 가장 잘 맞았어요. 원래 저는 작업시간이 긴 편인데 거의 세 시간 안에 쓴 것 같아요. 가이드가 너무 좋아서 그저 몰입해서 작업했어요. 제가 쓴 가사가 되겠다,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은 없었어요.”
Q. 나와 잘 맞지 않는 곡을 작업하는 경우는?
“작업방식을 바꿔보려고 해요. 평소에 하던 방식으로는 전혀 안 나올 것 같은 노래는 버스를 타고 무작정 떠나본다던지, 아니면 필에 취해서 써야한다고 느낄 때는 가볍게 맥주 한 잔을 마시고도 해봐요. 잘 하는 걸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못하는 걸 못하게 두는 것도 스펙트럼을 좁게 만드는 일인 것 같아요. 또 노트에도 써보고 핸드폰에도 써보고 컴퓨터로도 써보곤 해요.”
Q. 가사는 글이다? 음악이다?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작사에 질문을 받을 때 시 쓰는 게 가사 쓰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럼 저는 도움이 거의 되지 않는다고 답해요. 어떤 표현들을 쓰는 것에 있어선 유리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면에 있어서는 너무 다른 일이에요. 시는 철저히 문학이고 가사는 노랫말이잖아요. 가수의 입으로 불려 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Q. 가사는 쓰면 쓸수록 는다?
“공부하면서 쓰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아는 것만 써봤자 실력은 늘지 않을 테니까요. 문학도 마찬가진데 더 좋은 문장을 쓰려면 많이 읽어야하고 많이 봐야하고 많이 느껴야 해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색다른 경험이 필요한 거죠. 가사도 마찬가지로 다른 가사들을 보면서 이 가사가 왜 좋은지 어딜 어떻게 살렸는지 어떤 센스가 필요한지 찾아보면서 그런 것들을 나 자신에게 다른 방식으로 적용해 보면 좋아요. 스스로 이전에 할 수 없었던 방식들을 시도하다보면 결국엔 늘게 되어있다고 믿어요.”
Q. 가사를 잘 쓰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점은?
“여러 권의 노트를 써요. 한 권은 단어나 소재 노트에요. 사람의 기억력이 믿을 게 못 돼요. 생각난 게 있으면 까먹기 전에 적어놓죠. 단상이나 문장 또한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적어놓는 편이에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단어를 가져와서 콘셉트가 되는 경우도 있어요. 한 권은 분석하는 노트로 사용해요. 가수별로 어느 정도 정리를 해서 이 가수가 어떤 걸 선호하는지, 부합하는 이미지나 단어들이나 혹은 어떤 발음에서 강점이 있는지 그런 걸 봐요. 또 다른 한 권은 작사가 분석 노트에요. 다른 작사가들은 어떤 게 강점인지 하나하나 분석을 해서 정리해놓죠. 그러면 제가 할 수 없는 것들과, 그렇기에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명확하게 알 수 있어요.”
Q. 이렇게 노력하는 이유는?
“저는 제가 가진 재능이 크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보다 잘하려면 누구보다 더 디테일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단지 감으로만 붙었을 때 저는 경쟁할 자신이 없어요. 아무리 작사가란 일이 가수에 따라 페르소나를 쓰게 되더라도 작사가 각자의 성향이나 스타일은 분명히 있어요. 제가 구체적으로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마냥 써서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잘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봤기 때문에 가만 앉아서 운이 따르길 기다릴 수도 없었고요. 지금의 저는 제 스타일이 뭔지 알아가는 단계인 것 같아요.”
Q. 시인과 작사 두 직업 다 불안정한 직업이다. 창작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매일 의심하는 것 같아요.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이요. 이 일이 가장 힘든 건 지치기 쉽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일 거예요. 가사라는 게 들으면 3~4분 정도밖에 안 되니까 가볍게 보시는 분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막상 써 보면 쉽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반대로 어렵게 보고 정말 열심히 써도 되지 않을 때는 자신감을 쉽게 잃어버리게 되거든요. 그럴 땐 어떤 것 하나는 내 강점이라는 걸 스스로 찾아내고 알고 그것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자만은 안 되지만 자신감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일과 작사를 병행하는 것에 대해서?
“시 쓰는 건 주중에 출퇴근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텀이 있어요. 제가 시를 쓰면서 작사를 하니까 특이하게 보는 분들이 있지만 사실 학교나 직장을 다니면서 가사를 쓰는 분들이 더 힘들고 더 대단하다고 봐요. 과제나 일이 끝나고 지친 몸으로 가사를 써야 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그렇다고 일과 작사를 병행할 수 없다는 건 아니에요. 모든 곡들을 다 할 수 없다면 나한테 더 잘 맞는 곡에 올인하면 돼요. 그런 가사가 더 좋은 가사가 될 가능성이 높거든요. 내가 ‘빙의’할 수 있는 곡은, 짧은 시간에 완성해도 퀄리티가 높아질 수 있어요.”
Q. 작사가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아직 신인이기 때문에 제가 감히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어요. 그래서 저 스스로한테 늘 하는 말을 해드리고 싶어요. ‘지치지 말자’. 작사 일은 힘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 일인 것 같아요. 낼 힘이 없으니까. 지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같은 말일 수 있지만 내가 쓰는 가사가 나만 쓰는 가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꾸준히 하는 사람에게 빛이 한 번쯤은 찾아온다고 믿어요. 포기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작사가를 꿈꾸는 분들을 언제든 동료로서 만나게 된다면 정말 기쁘고 좋을 거예요.”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백융희 기자 historich@enteron.com / 디자인 정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