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유명준 기자] “2011년 ‘천일의 약속’ 당시 사람들이 ‘이런 신인이 있었나’라는 반응을 보였죠. 10년 동안 연기를 했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없었다는 거예요. 많이 속상했죠.”
속상함을 토로하는 모습이지만, 정유미는 여유가 있었다. 성공한 후 한때 힘들었던 과거를 ‘추억’으로 기억하듯이 말이다. 물론 아직도 더 다듬고 숙성시키는 중이긴 하다.
그러나 분명 정유미는 ‘육룡이 나르샤’와 ‘국수의 신-마스터’(이하 ‘국수의 신’) 출연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그 속도는 LTE 급이다. ‘10년 무명’ ‘1초 실미도’ 따위의 말은 이제 어색하다.
과거 정유미는 인터뷰에서 종종 대부분의 오디션 최종 결과에서 고배를 마시는 경험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항상 자신이 찾아가는 입장이었다. 그런 정유미의 위치는 10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바뀌었고, 지금은 어느새 주연의 위치에서 대중과 만나고 있다. 물론 아직 스스로 신기하게 여긴다.
“10년 전의 제가 지금의 저의 모습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믿어지지 않죠. 예전에는 오디션도 안 보고, 미팅도 안 하고 어떻게 작품을 하고 연기를 하겠느냐는 생각도 했어요. 내가 원하는 작품을 내가 선택하는 순간이 과연 올까라는 생각도 했죠. 전 저를 잘 알기에, 지금의 저의 모습에 감사하죠. 너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에요. (웃음) 제가 그냥 지금도 주인공이라 말하는 것도 쑥스럽죠. 주인공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화려한 분들만 주인공이라 생각했죠. 단역도 많이 하고, 제가 주인공감이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은 정말 이상한 기분이에요.”
정유미는 ‘국수의 신’에서 최여경 검사 역을 맡았다. 극 중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풀어내는 키를 쥐고 있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러나 역할의 비중에 비춰보면, 극 초반에는 존재감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더구나 드라마는 시놉시스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수십 년 내공을 지닌 배우가 아닌 이상에는 흔들릴 여지를 갖는다.
“당연히 힘들었죠. 처음에 감독님이 이야기한 것이 5~6부 때부터는 몽타주 식으로 한 번씩 등장할 것인데, 실망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야기 전환을 위해 필요하다고요. 그래서 일단 넘어갔는데, 이후 복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친구들 이야기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죠. 그때 많이 불안했어요. 친구들의 우정은 사라지고 아예 복수 이야기로 풀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죠. 그러면 전 작품에서 할 것이 없어지거든요. 그때마다 감독님이 복수 이야기 아닌 처음 이야기 그대로 풀 것이라 강조했어요. 감독님은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처럼 만들고 싶어 하셨어요. 어린 친구들이 세상에 던져지고 거기서 복수를 향해 치열하게 달려 나가고 나중에 성공해서 뒤돌아 봤는데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씁쓸한 내용이요. 그런데 흉흉한 소문을 돌고, 과연 감독의 의도대로 갈까 고민도 많았죠.”
최여경 검사는 현실에서 대중들이 인식하는 검사와는 거리가 있다. 물론 검사 중에서도 최여경 검사 같은 이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대하고 권력화된 조직일수록 조직의 성향이 개인의 성향을 압도한다. 현재 검찰이라는 조직 신뢰도는 바닥이 아니라 지하실 수준이다. 최여경 검사의 모습을 보고 통쾌하다고 느낌과 동시에 현실 속 검사와 이질감을 느끼는 이유다. 물론 최여경이 보여준 검사는 전문적인 느낌은 덜 하다. 어찌 보면 앞서 거론한 ‘역할’과 ‘현실’의 인식이 멀어도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이유일 것이다.
“솔직히 저는 법률이나 의학 쪽 전문직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검사 역이라고 해서 제 나름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고민했죠. 그런데 제가 전문적으로 고민을 못 해 본 것도 있지만, 극 중 검사라는 직업은 수단으로서만 존재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준비를 잘하지 못해도 그 상태로 잘 감춰진 상태로 넘어갔다고 봐요. (웃음). 드라마가 기 싸움 등 감정적인 면이 우선해서 검사로서 전문성이 약해도 커버가 잘 된 거 같아요.”
배우들이 캐릭터와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행운이다. 이는 두 가지 경우다. 배우의 성향과 성격이 캐릭터와 맞는 경우도 있고, 맞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끌고 가서 보는 이에게 믿음을 주는 경우다. 정유미의 지금까지의 캐릭터를 보면 후자에 가까웠다는 느낌이 강하다.
정유미는 과거 ‘엄마의 정원’ ‘옥탑방 왕세자’ 등을 연기한 후 극 중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를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끌고 가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감정선이 브라운관에서 연결 안 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최여경은 어땠을까.
“여경의 캐릭터는 초반에 시놉시스에서 잡았던 캐릭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많이 아쉬웠던 것은 여경이 감정선을 풀어가거나 시청자들에게 이해가 될 만한 의지, 복수에 대한 의지나 그런 것이 없이 합법한 복수가 가능한 인물로만 묘사가 되고, 그 안에서 여경으로 활용이 되었다는 거예요. 사실 부모님의 죽음은 여경이 가지고 있는 베이스지, 그것만 가지고 복수를 끌고 가며 길도랑 붙을 수는 없죠. 무명의 복수를 여경과 다른 친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도와야 하는데, 어찌 하다 보니, 이건 무명의 복수가 아니고 제 부모님의 복수를 향해 달려가는 느낌인 거죠. 그런데 그게 타당하려면 나의 아픔이 묻어져 있어야 하고, 그런 부분들이 시청자가 공감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이 길도를 죽여야만 한다고만 하니까, 공감이 안된거죠.”
< ②로 이어짐>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enteronnews.com / 디자인 정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