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장르에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CG(컴퓨터 그래픽)가 그려낸다. 더불어 실존하지만 통제하기 어려운 동물의 연기도 CG가 대신한다. 반려동물의 경우엔 직접 연기에 나서기도 하지만, 호랑이 등 야생동물에겐 연기를 맡길 수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가상의 동물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CG 기술력, 모션액터의 도움, 이를 진짜처럼 연기해줄 배우의 연기력이 필요하다.
‘대호’는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CG인 호랑이가 주인공인 영화였고, SBS 드라마 '대박'과 JTBC 드라마 '마녀보감'은 영화보다 상대적으로 CG 작업하는 데에 시간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CG로 호랑이와 늑대 등의 모습을 구현해냈다. 6월9일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 '정글북'에는 호랑이를 비롯해 70여 종의 동물들을 실사처럼 그려내며 동물 CG의 완성본으로 불리고 있다.
◇ 기술력
동물 CG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 자체가 어색하게 보이지 않을 기술력이다. 특히 동물은 익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진짜 같이 그리기 어려운데다 단순한 배경이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움직여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 ‘대호’
‘대호’의 호랑이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약 230여 명이 넘는 작업자들에 의해 탄생했다. ‘대호’의 작업을 맡은 포스 크리에이티브 파티(4th Creative Party)는 ‘암살’‘베테랑’‘설국열차’‘괴물’등의 영화에서 시각 효과를 담당한 베테랑이다.
먼저 호랑이의 무늬와 패턴 등 외형적인 것을 만드는 모델링 작업만 약 4개월의 시간이 소요됐고, 이후에는 호랑이의 질감을 만들어내는 텍스처 작업을 진행했다. 여기에 고양이과 동물의 해부학, 근육 자료들을 이용해 뼈를 심는 작업인 리깅(Rigging)을 진행했고, 화면에서 ‘대호’가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카메라 트랙킹 작업을 거쳐 기본적인 호흡과 걸음, 움직임을 부여하는 애니메이션 작업 등 총 11가지 공정을 거쳐 ‘대호’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진행했다.
► ‘대박’
‘대박’6회에서는 대길(장근석 분)이 아귀(김뢰하 분)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갔다가 호랑이를 만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전설 속의 호랑이는 대길 앞에 나타나 대길을 위협하며 극의 긴장감을 자아냈다. 결국 호랑이는 김체건(안길강 분)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김체건과 대길의 관계를 만드는 등 큰 역할을 했다.
‘대박’의 호랑이 CG를 만든 사람은 이준석 감독이다. ‘대박’관계자는 “이준석 감독은 앞서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너희들은 포위됐다’‘별에서 온 그대’등 CG가 드라마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작품에서 활약했다”고 전했다.
► ‘마녀보감’
‘마녀보감’2회에서 허준(윤시윤 분)은 허옥(조달환 분)과의 내기 때문에 연을 찾으러 흑림에 들어갔다가 백호와 마주했다.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허준이 백호에게 쫓기는 장면은 박진감 넘치게 펼쳐졌다. 백호 CG는 서극 감독의 ‘지취위호산’으로 제 52회금마장영화제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덱스터 팀이 참여했다.
이어 4회에서는 연희(김새론 분)의 수호령 늑대가 등장했다. 흑기운과 맞서 싸우는 늑대들의 생생한 표정은 물론 움직임과 털 하나하나의 세밀한 질감까지 살렸다. 늑대 CG는 영화 ‘트랜스포머’‘캐리비안의 해적’등 할리우드 대작 영화 CG를 연출한 미국 퍼페타 스튜디오의 홍재철 감독이 참여해 완성도 높은 시각 효과를 만들어냈다.
덱스터 관계자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흑림이라는 공간과 배우의 연기, 그리고 백호가 잘 어우러지도록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다. 공간과 어울리는 백호의 부피감이나 움직임의 디테일, 스케일을 살리려고 했다”고 전했다.
► ‘정글북’
‘정글북’은 영화 ‘아바타’‘라이프 오브 파이’‘그래비티’등을 탄생시킨 전문가들이 작업했다. 존 파브로 감독이 제시한 비전인 ‘리얼한 정글’을 만들어내기 위해 포토 리얼(사진처럼 사실적인) CG 동물들을 만들었다. 최첨단의 CG를 도입해 70여종이 넘는 CG 동물들을 리얼한 캐릭터들로 탄생시켰다.
◇ 모션액터 & 연기력
CG의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기술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배우들은 상상으로 동물들을 그려내 실제 캐릭터가 아닌 상상 속에서 동물들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를 통해 관객들은 그것이 분명 CG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CG임을 잊게 되기도 한다. 이를 위해 모션액터나 퍼핏 마스터(인형 조종사)들과 배우들의 연기 호흡도 필요하다.
► ‘대호’
촬영 현장에서는 모션액터 곽진석의 현장 연기로 사족 동물의 움직임을 재현했다. 스턴트맨 출신의 곽진석은 산을 자유자재로 뛰어다닐 수 있는 체력과 운동신경, 단순한 동물이 아닌 캐릭터로서의 감정을 이해하는 분석력과 연기력을 모두 갖춰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만족시켰다. 곽진석은 배우들이 볼 수 있는 상대 역할이 되어주었음은 물론, CG 작업의 방향성을 정할 수 있는 ‘대호’의 움직임과 걸어가는 방향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아역 배우 성유빈은 ‘대호’에서 석이 역을 맡아 대호와 호흡을 맞췄다. 촬영현장에는 ‘대호’를 대체할 인형과 모션액터가 있었고, 성유빈은 이를 마치 실재하는 것 같은 존재감으로 그려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호랑이를 상상력에 의존해 교감했다.
► ‘정글북’
영화 속 유일한 실사 배우인 모글리 역의 닐 세티는 실사 촬영 동안 함께 출연하는 캐릭터들과 연기호흡을 맞출 수 없었다. 함께 출연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CG였기 때문이다. 대신 존 파브로 감독은 퍼핏 마스터들을 데려와 닐 세티의 감정 연기를 돕게 했고, 때로는 존 파브로 감독이 직접 동물 캐릭터를 연기하며 촬영을 진행했다. 퍼핏 마스터들은 블루 스크린이 펼쳐진 세트장에서 목소리 연기를 한 배우들이 녹음한 보컬 트랙에 맞춰 움직이며 연기했고, 손에 작은 눈을 가지고 있거나, 커다란 실물 크기의 인형을 가지고 연기하기도 했다.
시각효과 감독 로버트 르가토는 “CG작업을 위해 테니스 공을 막대기 끝에 끼워서 찍을 수도 있지만, 실제 사람과 연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테니스 공은 절대 감정을 이끌어내거나 전문 인형극 공연자처럼 버라이어티한 반응을 이끌어 낼 수는 없다”라며 퍼핏 마스터들의 중요성을 전했다.
이주희 기자 lee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