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새로운 `유전자 가위` 기술로 생쥐 특정 유전자 기능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 유전자 가위는 생물의 유전정보가 들어있는 긴 DNA 사슬을 마치 가위처럼 자르는 인공 효소를 일컫는다.
한국연구재단은 이상욱 울산대 의대 교수팀이 지난해 처음 학계에 보고된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CRISPR) Cpf1`로 생쥐의 특정 유전자 기능을 완전히 없애는 데 성공했다고 6일 밝혔다.
특정 유전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 생쥐를 `녹아웃(Knockout) 마우스`라고 부른다. 녹아웃 마우스는 각 유전자가 몸속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아보는 기초연구와 신약개발 연구 등에 필수적인 실험동물이다.
연구팀은 크리스퍼 Cpf1 유전자 가위의 효과를 알아보고자 암을 억제한다고 알려진 유전자 `Trp53`만 공격하도록 Cpf1 가위를 디자인했다. 그 다음 이 유전자 가위를 생쥐 수정란에 넣고, 수정란을 암컷 쥐(대리모)의 자궁에 이식했다. 대리모가 낳은 새끼의 유전자를 분석하자 대부분의 경우 Trp53 유전자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유전자가 Cpf1 유전자 가위에 잘리고 다시 복구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생긴 것이다.
보통 유전자 가위로 잘라낸 부분은 생체의 DNA 재생 과정에 의해 새 DNA로 채워진다. DNA 재생 과정이 시작되기 전 다른 DNA 조각을 끼워 넣을 수도 있다. 유전자 가위로 자르고, 새로운 DNA로 채우는 과정을 `유전자 교정(편집)`이라고 부른다.
연구에서 최근 발견된 Cpf1 유전자 가위가 실제로 생쥐의 유전자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증명했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유전자 돌연변이나 항암세포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과학계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유전자가위는 크리스퍼 Cas9다. Cas9는 특정 DNA 염기를 잘라내는 효소 이름으로 두 가닥의 DNA를 나란히 자른다. Cas9 대신 Cpf1이라는 새로운 효소는 지난해 처음 개발됐다. Cpf1는 두 가닥의 DNA를 얼기설기 자르는 방식이다. 신형 유전자가위의 성능이 확인되면서 3세대 유전자가위의 세대교체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Cpf1 단백질은 지난해 MIT의 펑 장(Feng Zhang) 교수가 Cas9을 대신할 절단효소를 찾던 중 발견해 학계에 보고한 절단효소다. Cpf1 단백질은 Cas9 단백질과 다른 여러 특성으로 학계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표적 위치를 정확히 자르는지, 비표적 위치에 오작동하지 않는지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김진수 단장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절단 유전체 시퀀싱(Digenome-seq) 기법으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크리스퍼 Cpf1 유전자가위가 비표적 위치에서 오작동할 확률을 측정해 그 정확성을 규명했다.
절단 유전체 시퀀싱 기법은 유전자가위 처리 전후를 한 눈에 파악해 잘린 위치를 구별하는 방식이다. 인간 세포에서 분리 정제한 유전체 DNA를 크리스퍼 Cpf1으로 처리한 뒤, 전체 시퀀싱을 하고 잘려진 표적 염기서열과 비표적 염기서열을 비교한다.
연구진은 크리스퍼 Cpf1의 정확성을 측정한 결과 크리스퍼 Cas9보다 높은 정확성을 보인 것을 확인했다. 비표적 위치를 절단한 경우가 크리스퍼 Cas9보다 현저히 적었다. 인간 유전체 DNA 32억개 염기서열 중 표적 위치만 정확히 자르고 비표적 위치는 단 한 군데도 자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즉, 원치 않는 부위를 자르는 경우가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크리스퍼 Cpf1이 오작동할 확률이 매우 낮다는 의미다.
연구단은 여러 표적 위치에 각각 크리스퍼 Cpf1의 정확성을 측정했다. 경우에 따라 몇 개의 비표적 위치를 자르는 것도 있었으나 Cpf1 단백질과 크리스퍼 RNA를 혼합한 형태를 직접 세포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정확도를 향상시켜 표적 위치만 자를 수 있음을 입증했다.
김진수 단장은 “크리스퍼 Cpf1은 크리스퍼 Cas9보다 비표적 위치에서 작동할 확률이 낮고 정확성이 높다”며 “생명공학과 분자의학의 여러 분야에서 널리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생명과학과 화학분야 저명 학술지인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ature Biotechnology) 온라인판에 7일 게재됐다.
<크리스퍼 Cpf1와 Cas9 차이>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