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곽도원은 영화 ‘곡성’을 통해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앞서 그는 ‘황해’‘변호인’‘조선마술사’등에서 신스틸러로 관객들을 만났지만 극 전체를 이끌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작 ‘황해’에서 함께 했던 나홍진 감독이 그를 ‘곡성’의 주연으로 발탁했고,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연을 도맡는 황정민과 연기파 여배우 천우희가 그를 지원 했다.
“처음에 주인공을 한다고 했을 때, 주인공이 분명히 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을 텐데 내가 그 깜냥이 될까 싶었다. (황)정민 형이 정신적인 기둥이 되어 줘서 감사했다. 혼자 촬영하면서 정민 형이 오기를 기다렸다. 마치 일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하룻밤만 자면 돌아온다’이런 식으로 생각했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팀워크가 좋아서 다행이었다.”
곽도원은 ‘황해’에 이어 나홍진 감독과 두 번째 호흡을 맞췄다. 나홍진 감독과 6년 만에 작업을 하면서 감독의 작품과 스타일에서 어떤 것을 느꼈을까.
“나 감독은 지난번에 비해 더 차분해졌고 디테일해졌고 집요해졌다. 시나리오를 오래 붙잡고 있어서 그런지 작품이 더 깊이 있어지고 철학적인 것이 더 묻어났다. 다른 영화들이 일차원적인 색깔이 있었다면, 이번엔 그 안의 생각들이 더 깊어진 것 같다고 감히 생각해 봤다.”
‘곡성’은 대부분 로케이션으로 진행됐고, 촬영 기간은 총 6개월인 180일이었다. 그 중 150일이 촬영 기간이었고, 나머지 30일은 이동에 필요한 시간이었다. 때문에 주연으로서 현장을 책임졌던 곽도원이 쉴 수 있는 날도 거의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촬영 기간이 길었던 것이 아니라 완벽한 장면을 위해 계속 찍다보니 길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기에 충분히 ‘고생을 했다’고 말할 만하다.
"개월 가득 채워 촬영을 했는데, 쉬는 시간에는 스태프들이 산꼭대기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물통을 올려놓아야 했다. 시간이 없어서 회식도 하루밖에 못했다. 그나마 미술팀은 따로 할 게 있어서 참여하지 못했을 정도로 타이트 했다. 일단 날씨로 애를 먹었다. 비 오는 신을 찍기 위해 비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다. 심지어 산에 끼어있는 운무와 일출을 같이 찍어야 하고, 비도 부슬부슬 내리는 신을 찍기로 했는데, 그런 날씨를 원한다고 해서 그런 날씨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지 않나.(웃음)”
“박춘배(길창규 분)가 괴물로 변해서 싸우는 신이 총 3일 분량이었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가운데 있는 우물을 사이로 사건이 벌어지는데, 우물을 넘어가는 데만 3일이 걸렸다. 천우희와 마지막 골목신도 이틀 분량이었는데 5일을 찍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곽도원은 ‘인생 연기’를 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곽도원은 “나는 살 날이 오래 남았다”라며 자신의 연기를 모두 감독의 공으로 돌렸다.
“다른 작품에 비해서 테이크를 많이 가고, 뒤죽박죽 찍다보니까 감정을 어디까지 표현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었다. 일단 세게 표현해보고 약하게도 찍어봤다. 버전을 여러 개 찍어서 나중에 선택하는 방식이 더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그 결과가 마음에 들어서 ‘아수라’찍을 때도 그 방식을 사용했다.”
“배우가 연기를 준비해 가는데, 감독이 그 색깔이 아니라고 하면 배우들은 사경을 헤맨다. 나홍진 감독과 작업을 하면, 그의 색깔에 죽도로 맞춰야 한다. 배우가 아무리 준비해도 그게 맞는 것인지 명확하게 볼 줄 모르는데, 좋은 감독은 그 라인을 지켜준다. 감독은 분명해야 하고, 정말 똑똑해야 한다.”
나홍진 감독과 함께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촬영 현장에서의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그와 작업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만약 나홍진 감독이 곽도원에게 세 번째로 함께하자고 제안하면, 그는 또 다시 함께할 수 있을까.
“촬영이 끝나고 나면 일을 열심히 한 후 맥주 한 잔 한 느낌이다. 나 스스로 발전한 것 같다. 내 한계가 이만큼이라고 생각했는데 ‘저것도 해내는 사람이었구나’라고 대견하다. ‘울트라 초사이어인’(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인물)이 된 느낌이다.(웃음) ‘곡성’찍고 난 다음에 다른 영화를 찍었는데, 참 편했다. 밤 샌다고 해도 그러려니 한다.(웃음) 지지고 볶아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앞으로 어떤 것을 하든 정신적으로는 자신이 있을 것 같다. 내가 언젠가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건방져진다면 나 감독과 다시 함께 하면서 겸손을 배우고 싶다. 현장에 가면 최선을 뭔지 알게 되니까. 그는 한 컷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보여준다. 배우가 계속 작품을 하다보면 나태해질 수 있는데 나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처절하게 노력하겠다.”
이주희 기자 lee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