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CJ 대학로 아지트에서 '크레센도 궁전' 첫 공연이 열렸다. ‘크레센도 궁전’은 20대 취업 준비생 딸과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딸에게 결혼을 강요하며 자신의 불만족한 삶을 대리만족 하려는 어머니, 이 문제에서 비롯된 가정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지만 이 둘의 관계에서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짚어볼 수 있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학대를 일삼던 가장은 IMF 이후 실직자로 전락한 뒤 가정 내에서 절대적인 힘을 잃었다. 그 후 실질적인 가장이 된 엄마는 딸과 아들을 위해 식당 일을 뛰며 자식의 성공만을 바란다. 엄마는 늘 어린 시절 현실 탓에 이어가지 못했던 학업,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진짜 꿈에 대한 미련으로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못다 이룬 행복을 자식들에게 투영시켜 대리만족 하려고 한다.
29살 딸은 그런 어머니를 위해 매일 과외 아르바이트와 도서관을 오가며 4년 째 7급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늘 스펙 좋고 직업 좋은 남자와 결혼하기 바란다. 자신이 무능력한 남자와 결혼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탓에서다.
극 중 딸은 어머니와 결혼 문제를 놓고 대립하다 “결혼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잖아”라는 대사를 던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청소년들은 오로지 좋은 대학에 간다는 목표로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에서 보낸다. 그리고 어렵게 입학한 대학에서는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기보단 등록금, 취업을 위해 각종 자격증, 영어공부에 매달린다. 그 후 힘들게 취업하거나 취업하지 못하면 백수로 전락한다.
극에서 딸과 SNS로 만난 남성은 로맨틱한 연애를 꿈꾸지만 취업난 앞에 연애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근근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데 연애는 사치라는 것이다.
결국 극에서 엄마는 자식에게 자신의 사상만을 주입하다 다툼이 최고조로 일어난 뒤 갈등이 풀린다.
엄마는 자식의 행복을 바라기 보단 자신의 일상에 만족하며 그럭저럭 소소하게 살아간다. 딸 역시 누구를 위해서, 결혼을 위해서도 아닌 자신을 위한 진정한 꿈을 위해 나아갈 준비를 했다. 그 전과 똑같이 도서관과 아르바이트를 오가면서 생활하지만 딸은 자신의 꿈을 위한 길이기에 행복할 수 있다.
결국 모든 갈등의 해소 방안은 ‘나’다. 이 극을 쓴 김슬기 작가 역시 결혼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 자신 안에 닫힌 문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집필했다고 전했다.
‘크레센도 궁전’은 점점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커지는 압박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궁전이 지어지는, 인생의 도돌이표를 담고 있다.
‘크레센도 궁전’은 지난 24일부터 6월5일까지 CJ 아지트 대학로에서 공연한다. 배우 강애심, 김소진, 권일, 김민하 출연.
백융희 기자 yhbae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