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아들을 대신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14년의 시간을 눈물로 허물기에 그 벽은 높았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에서 유승준(미국명 스티브유)이 미국 로스엔젤레스(LA) 총영사관을 상대로 제기한 한국 비자 발급 거부 처분 취소 소송의 세 번째 변론이 진행된 가운데, 유승준의 부친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이날 부친은 눈물로 호소하며 모든 것이 본인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누구보다 가정의 행복을 중요시 하는 평소 신념을 가져 가족끼리 이산가족이 될 수 없었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중요한 쟁점은 따로 있었다. 허리디스크 수술로 4급 판정을 받은 유승준이 추후 진행된 음악 공연, 방송 등의 스케줄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는 것이다.
유승준이 디스크 수술 후 병역 기피 목적 의심을 받았기에 반성하는 마음으로 진통제, 마취제 등을 복용하며 스케줄을 진행했다는 주장은 진통제, 마취제 복용을 했는지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내용이다.
유승준은 국내 활동 당시 군 문제 이야기를 자진해서 언급하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군대에 꼭 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활동 중 허리 부상을 입었고, 수술하지 않으면 재발된다는 의사의 말에 수술을 감행했다.
평소 약속과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유승준은 군입대에 관련해 이미 확실한 주장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의심을 받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따라서 진통제 등을 맞으며 스케줄을 감행한 것은 납득할 만하다.
이날 변론에서 그의 아버지가 어려웠던 가정환경, 활동환경, 건강상태 등의 이유를 언급하며 새로운 판도가 제시되는 듯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논점엔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입대를 앞두고 시민권 취득을 했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증인은 말끝을 흐리며 멋쩍은 웃음을 보냈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대답했다.
유승준이 군입대 하기 전 혹은 군입대 후에 시민권 취득을 해도 늦지 않았다. 징병검사까지 끝내고 군입대를 앞둔 시점에 이산가족이 될까 두려워 시민권을 취득한다는 것은 다소 의아한 부분이다.
설령 그의 아버지의 끈질긴 설득으로 인해 유승준이 국민과 약속을 저버렸다고 해도 그건 그의 부친의 문제가 아니다. 대중은 국내 팬들을 저버리고 미국 시민권자가 된 사실을, 법정 내에서 14년이란 세월 동안 아들에 대한 죄책감, 미안함을 품고 살았던 그의 아버지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20대 초반으로 어린 나이이긴 하지만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스스로 선택한 건 유승준 그이기 때문이다.
6월7일 제4차 변론을 앞두고 유승준 측은 결백을 주장하는 새로운 증거물, 혹은 2002년 당시 군 기피 오해 소지를 불러일으킨 기사를 쓴 기자 등의 증인과 연락이 닿는다면 그를 출석시킬 예정이다.
마지막 변론이 될지도 모르는 제 4차 변론에서 어떤 결정적인 증언이 오갈지, 만일 그의 결백이 입증 돼 한국 활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문제없이 지속적인 활동을 했더라면 한국 가요계의 한 획을 그었을 인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를 추억하는 이들에게 환영 받을 순 있겠지만 그 명성이 여전할 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승준이 판결에서 승소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호소가 아닌 높아진 14년의 오해를 한 번에 허물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가 제시돼야 할 것이다.
백융희 기자 yhbae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