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가 해외로 나가면서 자극적이고 친절한 ‘하녀’가 됐다. 제목과 함께 포스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국내와 프랑스(‘Mademoiselle’)에서는 김민희가 연기한 히데코를 가리키는 ‘아가씨’를 제목으로 선택했고, 이와 달리 미국에서는 김태리가 연기한 숙희를 지칭하는 ‘하녀(The Handmaiden)’를, 대만에는 '하녀의 유혹'으로 제목을 결정했다. 영국에서 출간된 원작 소설과 영국드라마의 제목은 '핑거스미스(Fingersmith)'로, 숙희(원작에서는 수 트린더)를 가리킨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의 제목인 ‘하녀’는 박찬욱 감독이 직접 관여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아가씨와 하녀 두 사람이 주인공인 만큼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영화가 달라진다. '아가씨와 하녀'가 아닌 특정인을 타이틀롤로 내세우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게 된다. 박 감독이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지 않고 여러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열어둔 점이 흥미롭다.
‘아가씨’의 배급사 CJ E&M 영화사업부문은 “국내 제목과 영어 제목 결정에 감독님이 참여했다.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는 각 배급사에서 제목을 결정할 예정”이라며 “국내 제목과 미국판 제목에 차이를 둔 이유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아가씨를 주인공으로 볼 수도 있고, 하녀를 주인공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 때문이다. 이런 독특한 재미를 주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선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아가씨’의 포스터는 국내용과 해외용이 다르다. 제69회 칸 영화제에서 쓰인 포스터는 CJ E&M 영화사업부에서 해외용으로 만든 포스터를 그대로 사용했다.
우선 해외용보다 국내용 포스터가 화려하다. 해외용의 인물들이 흰색, 검은색 등 무채색의 의상을 입고 있지만, 국내용의 인물들은 핑크빛 기모노로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포스터의 사이사이에 있는 인물들의 행동들이다. 국내용에서 히데코가 양 팔을 위로 해 나무에 매달려 있다면, 해외용에서는 하얀줄에 목을 매달고 있다. 자살하는 장면처럼 보이는 이 모습은 실사가 아님에도 섬찟하다.
또한 국내용에 후견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와 아가씨로 보이는 아이와 성인 여자가 있는 그림은 해외용에서는 여성들의 정사 장면으로 바뀌었다.
국내용이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아가씨의 모습이 그려졌다면, 해외용에서는 자극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 포스터 속 장면들은 실제 영화에 나오는 장면으로 알려져 있다. 목을 매는 것과 정사신 등은 극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장면으로서, 국내용보다 핵심적인 부분을 담고 있기에 조금 더 친절한 포스터라고 할 수 있겠다.
CJ E&M 영화사업부은 “대상 관객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포스터를 만들었다. 마케팅 관점에서는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하지 않나”라며 “두 포스터 모두 CJ E&M 영화사업부에서 진행했고, 제작은 영국회사가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해외와 국내 영화의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CJ E&M 영화사업부 홍보팀은 “일단 칸 버전과 국내 버전은 거의 동일한 버전이다. 각 배급사에서 임의로 내용을 바꿀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현재 ‘아가씨’는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필름 마켓에서 전 세계 175개 국가에 판매됐다. 이는 종전 한국영화 최다 국가 판매 기록인 ‘설국열차’의 167개국 판매 기록을 넘어선 수치로, 해외에서의 ‘아가씨’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CJ E&M 영화사업부 김성은 해외사업부장은 “이미 칸 국제영화제 이전 7분 하이라이트 영상과 영문 대본만을 보고 120개국에서 영화를 구매했다. 120개국 바이어들 역시 칸에서 영화를 직접 본 후 자국에서의 흥행 성공을 조심스럽게 점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아가씨’의 미국 배급사인 아마존 스튜디오와 매그놀리아는 올해 9월, 프랑스의 배급사 조커스 필름은 10월5일, 대만은 6월24일에 개봉을 계획하고 있다. 이미 제목이 결정된 미국과 프랑스 외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제목이 붙여질지, 어떤 포스터를 제작할 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 받은 하녀와 아가씨의 후견인까지,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6월1일 국내 개봉.
이주희 기자 lee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