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계춘할망’에서 김고은이 맡은 혜지와 그의 할머니인 계춘은 어린 시절 헤어졌다 12년 만에 극적으로 다시 만난다. 하나 밖에 없는 피붙이 혜지를 잃었다 다시 찾은 계춘은 손녀가 마냥 애틋하고 소중하지만, 덜어져 있던 시간 동안 사회의 차가움에 부딪혀 이미 표면이 거칠어진 손녀는 할머니의 따뜻함에 도리어 거리를 둔다.
“‘계춘할망’은 손녀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딱 이 관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겪을 수 있는 감정들이 어우러진 작품이에요. 그만큼 보편화 된 감정들이기 때문에 과장되게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표현을 한 번 한 번 할 때마다 신중하게 연기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윤여정)선생님의 눈만 봐도 울컥울컥 눈물이 나서, 그걸 누르는 게 힘들기도 했어요.”
촬영 현장에서 윤여정은 총대를 매고 쓴소리를 담당한다. 불필요하게 촬영이 지연되거나 각자 맡은 부분에 있어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할 때면 거침없이 직언을 하며 악역을 자처한다. 대선배의 불호령에 무서울 법도 한데 김고은은 윤여정을 따뜻한 사람이라 말했다.
“(윤여정)선생님과 첫 만남이 있던 날, 워낙 대 선배님이시니까 제가 많이 조심했던 기억이 나요. 감독님이 ‘선생님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너무 어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표현은 강하셔도 속으론 따뜻하신 분’이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도 어느 순간 그걸 느끼게 됐어요. 감독님이 저를 나무라면 오히려 선생님이 제 편을 들어주셔서 감사했어요.”
‘은교’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데뷔했지만, 그간의 작품들이 전부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고은은 정작 그 부분을 크게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그는 자신이 했던 모든 작품이 (흥행에 상관없이) 전부 소중하고 간절했다고 말했다.
“(윤여정)선생님 같은 대 선배님과 함께 호흡을 맞춘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제가 이전에 했던 작품들은 모두 선배님들과 함께하는 롤이었어요. 저는 다른 것보다, 작품 안에서 제 몫을 해내야 된다는 생각이 가장 강하고 늘 그 생각뿐이에요. 그리고 많이 배우려고 노력해요. 선배님들은 특별한 분들이에요. 그 특별함에는 분명 이유가 있고, 저는 그게 뭔지 늘 궁금해요. 사람들에게 ‘좋은 배우’로 불리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좋은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요.”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배우며 쌓아온 배우 김고은의 중심은 다름 아닌 ‘태도’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배우의 태도예요. 현장에서의 태도나 선배님들을 대하는 태도, 연기를 대하는 태도를 비롯한 것들이요. 그렇기 때문에 저에 대한 오해들이 많이 속상했어요. 여러 이야기들을 들으며 스스로 조심하게 되고, 그게 거듭되면서 점점 제 자신을 잃어 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조금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누군가는 저의 말과 행동으로 오해를 하는 일이 있더라도 꾸미지 말고 자연스럽고 싶어요. 왜곡되는 것을 겁내며 전전긍긍하기보다, 나를 겪은 사람들만이라도 나의 편에 서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진보연 기자 jinb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