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의 화려한 모습을 브라운관에 담던 방송 스태프들이 어느 순간부터 브라운관 안쪽으로 들어왔다. 시청자들은 이를 보고 ‘스태프들의 연예인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스태프들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배가 되기도 한다. 브라운관 밖에서의 상황만 신경 쓰던 이들이, 이제는 그 안에서까지 고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스튜디오 안팎을 가리지 않고, 예능이나 교양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권해봄 PD
권해봄 PD는 일명 모르모트 PD로 불린다. 실험용 쥐처럼 온갖 콘텐츠로 실험당하고 있기에 붙여진 별명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매주 게스트와 콘텐츠가 바뀌는 포맷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주기 위해 그것을 배울 대상이 필요하다. 그 어려운 역할은 권해봄 PD가 맡았으며 그는 게스트가 시키는 대로 굉장히 열심히 해낸다. 하지만 한 영역의 전문가인 게스트들이 권 PD에게 가장 기초적인 것을 가르치더라도 그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시청자들 눈에는 그가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에 웃음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권 PD는 처음 방송에 출연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처음에 예정화의 스트레칭을 따라할 사람이 필요했고, 선배가 일반인 느낌을 내보자고 해서 현장에 투입 됐다”라고 운을 뗐다. 예정화의 스트레칭 수업으로 시작한 권 PD는 김동현-추성훈과 격투, ‘프로듀스 101’의 춤 선생님 배윤정-가희와의 댄스 수업, 가수 빽가의 누드모델 등 험난한 과정을 거쳐 왔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촬영으로 윤도현과의 스케이트보드 촬영을, 가장 당황스러웠던 촬영은 빽가와의 누드모델 촬영을 들었다. 그는 “윤도현에게 스케이트보드를 배웠는데, 배우다가 잘못 넘어져 연골을 약간 다쳤다. 아픈 티를 내면 안 되니까 힘들더라”며 “가장 싫었던 것은 누드모델 할 때였다. 절대 안 하겠다고 했는데, 빽가가 진짜 멋있게 찍어주겠다고 설득하셔서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 배우는 거라 해프닝이 많이 생기고 생방송이라서 당황스러운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고 덧붙였다.
권 PD는 게스트와 호흡을 맞추는 출연자이면서 자신이 출연하는 방의 담당 PD다. 그는 “원래 제가 출연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PD로서 어떻게 하면 더 재밌을까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직접 편집을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출연자들과 호흡을 맞추다보니까 그분들이 어떻게 하면 더 재밌고 매력 있게 나갈까 고민을 많이 한다”라며 PD와 출연자로서의 고민을 털어놨다.
또한 그는 “물론 제가 직접 출연하지 않고 밖에서 연출할 때가 더 편하다. 뭘 해도 즐기는 편이라 즐겁게는 하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카메라 뒤에서 해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다”며 “그래도 이미 제 모습이 하나의 패턴이 되어 시청자가 기대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고, 콘텐츠 자체도 혼자 하는 것보다 누군가 배워야 더 재밌을 거다. 그래서 말 그대로 모르모트가 필요한 것 같다”라고 전했다.
#. SBS 예능프로그램 '정글의 법칙' 오세웅 VJ
지난 15일 방송한 ‘정글의 법칙 in 통가’에서는 열정적인 배우 이훈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이훈의 모습을 찍는 오세웅 VJ의 모습도 함께 전파를 탔다. 이날 이훈은 코코넛 크랩을 잡기 위해 3시간 동안 누쿠섬 전체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고, 우연히 야생 닭을 본 이후 닭추격전에 나섰다. 결국 이훈 전담 VJ는 쉬지 않고 달리는 이훈을 놓치고 말아 시청자들을 폭소케 했다. 이에 이훈은 VJ를 위해 코코넛 열매를 선물하며 위로했으나 이어 또 다시 VJ를 두고 달려 웃음을 자아냈다.
오 VJ는 ‘정글의 법칙’을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스트로 이훈을 꼽았다. 그는 “이훈 씨는 40도가 넘는 기온 속에서도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이셨는데,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죽는 줄 알았다. 보통 VJ가 힘들다고 하면 같이 쉬는 경우도 있는데, 이훈 씨는 ‘알았어. 넌 쉬어’라면서 혼자 사냥하러 나서더라”며 “사우나에서 운동하는 느낌을 상상하시면 될 것 같다”라고 고통을 토로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VJ가 출연자를 선택해서 전담하느냐는 질문에는 “VJ가 선택하지는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따라간다. 마침 이훈 씨가 탐사하러 나간다고 하셔서 운 나쁘게(?) 제가 따라 갔다”라며, 이훈을 놓친 장면이 전파를 탄 것에 대해서는 “사실 힘들어서 못 쫒아간 모습이 방송에 나와서 많이 창피했다. 놓치면 안 되는걸 알면서도 몸이 따라주질 않더라. 제가 안 찍는 동안 이훈 씨가 닭을 잡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 닭을 잡았는데 잡은 영상이 없으면 시청자에게 보여줄 것이 없으니까. 덧붙이고 싶은 말은 VJ가 힘들어서 못 쫒아갈 만큼 이훈 씨가 열정적으로 뛰어다녔다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글이 힘들고 지치지만, 그것보다 재미있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새로운 출연자들과 함께 땀 흘리며 뛰어 다니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매주 10% 초 중반대의 시청률이 나오는 프로그램에 제가 찍은 영상이 나온다는 것도 뿌듯하다”라며 프로그램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 KBS 교양프로그램 '버스' 길다영 PD
지난 18일 KBS2 신규 교양프로그램 ‘버스’가 방송됐다. PD가 직접 버스에 타 다양한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우연히 만난 그들의 집이나 직장 등에 따라가 삶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포맷을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미리 섭외되지 않은 일반인을 촬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난생 처음 자신을 향하는 카메라 렌즈에 경계 어린 시선을 보내기 때문이다. 제작진도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것도 준비할 수 없었고,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졌다.
1시간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버스’팀은 서울의 143번 버스를 보름 동안 탔고, 다양한 상황과 맞닥뜨렸다. ‘버스’팀은 수많은 시민들에게 “죄송하지만 방송에 안 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은 후에야 겨우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길다영 PD는 “아버님과 말이 통해서 집까지 같이 갔는데, 아내 되시는 분이 절대 촬영할 수 없다며 우리가 가는 길에 소금을 뿌린 적도 있다. 메인 PD인 전진 선배는 여성분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일단 경비실에 들러서 30분 안에 안 나오면 신고해 달라는 부탁까지 하기도 했다.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막상 당일이 되자 촬영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했다. 요새 워낙 몰카가 많으니까 의심하게 되는 것 같았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미리 알고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리된 질문지를 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분들이 먼저 자기 얘기를 해준다. 그걸 보면서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구나’, ‘나는 들으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이야기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람 만나는 일이 재밌어서 일에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저는 예능 PD가 아니라 연예인분들은 인터뷰해본 적은 없지만, 제가 만나는 일반인들 중에는 정말 좋으신 분들이 많다. 일반인 분들과 힘든 얘기 또는 재밌는 얘기를 함께 하면서 같이 울고 웃는 것이 좋다”라며 교양국 PD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주희 기자 lee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