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어화’는 1943년 대중가요의 태동기, 시대를 위로했던 음악과 음악을 사랑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유연석은 대중가요 최고 인기 작곡가 윤우 역을 연기했다.
초반 윤우는 연인인 소율(한효주 분)이 자신의 소신을 담은 노래 ‘조선의 마음’을 불러주길 바라지만, 연희(천우희 분)를 만난 후 연희가 자신의 뮤즈임을 깨닫는다. 뿐만 아니라 윤우는 오히려 소율과 연희의 뮤즈이기도 했다. 대중가요를 부르지 않겠다던 소율와 연희가 대중가요에 강렬한 욕망을 갖게된 것은 윤우 덕분이었던 것이다.
“어떤 관계를 통해 음악적 영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윤우ㆍ소율ㆍ연희는 서로의 자극제가 됐던 존재였던 것 같다. 소율도 이전에 대중가요를 부를 때 혹평을 들었던 것과 달리 윤우가 마지막으로 작곡해준 ‘사랑, 거짓말’이라는 노래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데, 이것도 윤우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윤우는 연희를 뮤즈로 생각하는데, 그 과정이 편집돼 아쉽다. 윤우가 ‘조선의 마음’이라는 곡을 준비하면서 연희를 버린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연희 아버지는 돈 몇 푼에 딸을 팔아먹는 사람이었고, 그때 윤우는 진짜 조선이 뭔지 다시 생각하면서 ‘조선의 마음’을 제대로 써보겠다고 결심한다.”
한효주와 천우희가 노래로 그들의 마음을 표현한다면, 유연석은 피아노로 마음을 표현해 낸다. 그는 피아노 신을 완벽하게 그리기 위해 영화 이전에 촬영했던 드라마 ‘맨도롱 또똣’ 촬영장인 제주도까지 키보드를 들고 가는 등 노력했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운 적 있지만, 작곡가처럼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연주로 표현할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윤우는 그래야 했기 때문에 연습을 많이 했다.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제주도에서 연습할 당시엔 악보대로 온전히 쳐내는 것에 집중을 했었다.”
특히 유연석은 일본군 앞에서 직접 ‘아리랑’을 치며 온 감정을 쏟아내는데, 말 한마디 없이 오직 피아노로만 감정을 전달하는 멋진 신을 만들어냈다.
“사실 처음 악보는 촬영분과 조금 다르다. 더 화려한 코드가 있었는데, 술에 취한 상황이기 때문에 코드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예쁜 선율이 아니라 엇박자로 말하듯이 연주를 하고 싶었다. 일본군 앞에서 ‘아리랑’을 치는 것 자체가 그들의 말이 거슬린다는 뜻이고, 그래서 건반을 꽝 내려치고 하고 싶은 말을 해나갔다. 나중에 그들에게 저지를 당하면서도 피아노를 치는데, 그 상황과 감정을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영화에 현장음이 그대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그는 40년대 음악을 다룬 ‘해어화’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며,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경성시대를 다루는 작품들이 더러 있기는 했지만 그 시대의 음악을 다룬 영화는 거의 없었다. 생소한 정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노래를 들어볼 수 있고, 의복이나 배경 등 볼거리도 있다. 게다가 본인의 재능을 믿지 못함으로서 짙은 회환을 갖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이주희 기자 lee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