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나 허브 향이 마음의 병까지 치유한다니!

Photo Image

한해를 마감하고 희망찬 새해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하지만 신문이나 방송에는 연일 우울한 소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친아버지가 11살 딸을 구박하고 굶기다시피 해 사회적 물의를 빚는가하면, 자식들에게 전재산을 물려주고도 외면 당한 노인이 법에 호소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몇 달 전에는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이처럼 상상하기조차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혼자 힘으로는 어쩔 수 없어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인재나 천재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치유하는데 ‘원예요법’을 활용해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예요법을 대체의학의 일종으로 검토는 되고 있으나, 아직 의료 현장에는 도입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식물과 접촉하게 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병이나 장애 그리고 노화에 맞서는 원예요법은 2차대전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을 위한 재활치료 방법으로서 구미에서 시작됐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원예요법을 도입하기 시작했으며, 1995년 한신(阪神)대지진때 피해자들을 위한 정신적 치료방법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 이후 일본에서는 생활과 밀접한 원예를 치료에 활용하려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으며, 대학에서는 과학적 근거를 찾기 위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일본원예요법학회는 원예요법에 대해 ‘의료나 복지 영역에서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원예를 통해 지원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효고(兵庫)현 아마가사키(尼崎)시에 있는 간사이노재(関西労災)병원 정면 현관 맞은편에 ‘향나무 정원’이라는 약 5000평방미터의 식물원이 있다. 약 400종의 나무와 다양한 꽃들이 내방객들을 맞이한다. 이 많은 꽃과 나무를 돌보는 사람은 ‘원예요법사’라는 신종직업의 28세 처녀 사사키 마이(佐々木麻衣)다. 이 병원은 환자들의 마음 상처를 치유하는데 원예요법을 활용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사사키 원예요법사는 “원예요법의 과학적 근거를 댈 수는 없지만 효과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며 “다양한 슬픔을 안고 있는 환자들이 식물을 통해 기쁨을 얻고, 원기를 회복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어느 날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40대 말기 암 환자의 얼굴과 몸을 허브의 일종인 카모밀 향이 나는 물수건으로 닦아주었더니 미소를 띠면서 손발을 움직인 적도 있었다. 한 치매 환자에게 자소엽 향을 맡게 하자 어머니와 함께 음식을 만들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간사이노재병원이 원예요법을 도입한 계기는 2005년 4월 인근지역에서 일어난 JR선 탈선사고였다. 사고 당시 병원으로 이송됐던 부상자들은 정원에 핀 봄꽃을 보면서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봤던 병원장은 “앞으로 병원은 마음의 병까지 치유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며 식물원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요코하마(横浜)에 있는 특정비영리활동법인(NPO) 일본원예요법연수회의 사와다 미도리(沢田みどり) 대표는 요즘 사회인을 대상으로 원예요법사 육성에 나서고 있다. 그는 “원예요법은 병을 치료하는 수단이 아니라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테라피”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연수회는 요코하마에서 매주 수요일 고령자를 대상으로 원예요법을 가르치고 있다. 매번 15명 정도가 참가하는데, 5~7월에는 방울토마토나 양상추 등 여름야채를 가꾸고 10~12월에는 이년초 등 추동야채를 가꾼다. 사와다 대표는 “치매 증상 때문에 잠을 잘 못자고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던 사람, 매일 의자에 앉아 굳은 표정만 짓던 사람에게 원예요법을 사용했더니 표정이 한층 밝아지고 스스로 몸을 움직이면서 대화도 늘어났다”고 말한다.

도쿄농업대학은 2006년에 ‘바이오테라피학과’를 개설해 2010년 봄 첫 졸업자를 배출했다. 이 학과에서는 작업요법이나 이화학요법 등을 가르친다. 밭에서 식물을 기르는 것뿐만 아니라 숲 속을 거니는 것도 요법의 하나다. 대상자의 변화를 면밀히 살피면서 문제가 있다면 수법이나 장소를 바꾼다. 보통 1시간 정도의 과정을 매주 1~2회만 실시해도 효과가 크다. 장기입원으로 인한 고령자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3개월, 어린이의 섭식장애를 치유하는 데는 1년 정도 원예요법을 사용하면 눈에 띄게 증상이 호전된다고 한다. 원예요법사는 연구자나 의사들로 구성된 일본원예요법학회가 인정하는 민간자격으로, 지금까지 약 40명이 자격을 취득했다.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원예에 관한 지식은 물론 의학이나 심리학․사회복지․커뮤니케이션 등 폭넓은 지식이 요구된다.

무사시노(武蔵野)적십자병원의 도미타 히로키(富田博樹)원장은 “식물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준다. 작업을 수반하는 원예가 치매 등에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원예요법의 목적은 환자들의 두뇌를 자극하여 운동시키고 심리적으로 정서적인 안정감을 갖게 하는 데 있다. 치매 노인들에게 원예요법을 실시했더니 우울증 증세가 현저히 개선되었다는 연구결과도 잇다. 사람이 관상식물을 볼 때 좌뇌 전두부와 측두부의 활동력이 높아지고, 사고와 기억력을 주관하는 부위의 활동력이 현저하게 증가한다고 한다. 이는 식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해소와 뇌 기능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에서 원예요법이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여러 기관들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원예치료의 효과가 입증되고 있고, 활발한 학문적 연구와 임상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원예요법은 주로 정신적, 신체적 장애자를 대상으로 했으니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최근에는 LED 광원을 이용하여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는 ‘식물생육고’도 등장했다. 개발자인 (주)IZU의 김용원 이사는 “소비자들이 양액으로 키운 완전 무공해 채소를 매일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신의 안정을 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장치”라고 설명한다. 식물을 키우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산소가 배출되며, 가습기 역할도 하게 된다. 사실 우리 선조들은 원예요법을 이미 생활 속에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집집마다 마당에는 모란이나 작약 등을 심어놓고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졌던 것이다. 집안에서 누군가 갑자기 병이 나면 마당에서 키우던 식물을 캐내어 뿌리를 다려먹기도 했다. 보고 즐길 뿐만 아니라 활용까지 염두에 둔 것이 원예요법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은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마음의 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원예요법은 이를 해결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국진 기자(bitnara@next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