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아버지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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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 대한 부정(父情)이 국민적 애증으로 발전한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한 아버지는 로스쿨 출신 딸 취업 청탁 의혹에 휘말렸다. 또 다른 아버지는 로스쿨 졸업시험 압박 논란에 휩싸였다. 공교롭게도 두 아버지 모두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적지 않다. 일련 사건은 사시존치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게다가 21세기판 계급사회론이 등장했다. 부의 대물림을 넘어 사회적 지위와 신분 상속을 화두로 던졌다.

자본주의는 진화론 측면에서 훌륭한 사회체계다. 역사 속에서 적자생존했다. 폐단도 있다. 양극화, 불평등 심화가 그것이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른바 세습자본주의화 경향이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지적한 대목이다. 핵심은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지른다. 땅콩이 열 바퀴 굴러봐야 수박을 이겨낼 수 없는 이치다.

2015년 겨울 대한민국 현실은 피케티를 떠올리게 한다. 피케티 이론적 배경이 경제학을 넘어 우리 사회 전 분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분과 지위 대물림 현상이 그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자와 빈자는 존재했다. 문제는 대다수 국민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근래 들어 신분상승에 대한 꿈과 희망을 접는 이들이 발생하고 있다.

왜일까. 점점 인생역전 기회가 줄고 있다. 기회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경제적 부의 상속을 뛰어넘어 사회경제적 지위 상속사회가 돼 간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대변되는 수저계급론은 이를 반영한다. 풍자와 시각화로 빈자 정서를 전한다. 출생 한계에 대한 체념도 묻어난다.

흙수저, 금수저 논란은 우리 시대 가치충돌 상징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노력 vs 상속’이라는 가치 대결로 치닫는다. 부모 재산을 상속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미국, 영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천운을 타고 난 것이다. 부러움 대상일 수 있지만 현실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아쉬운 대목은 노력하려는 자에게 기회의 문을 봉쇄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을 곳곳에 친다. 시청 앞 차벽보다 견고하다. 보이지 않는 손은 계층이동 사다리도 치워버린다. 이대로 가면 우리 사회는 ‘배경(back) 없는 사람’은 희망을 품을 수 없다.

세습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산 상속자들’은 잘나갈 수밖에 없다. 돈이 돈을, 부가 부를 창출하는 시대다. 미 경제전문 매체 포브스 조사는 이를 대변한다. 미국은 억만장자 4명 중 3명이 자수성가형이지만 우리는 정반대다. 더 큰 문제는 권력과 지위 재생산 구조 고착화다. 지금처럼 가면 능력주의는 허구로 판명난다. 인생역전은 로또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윗과 골리앗 경쟁이기 때문이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자와 외제차를 탄 자의 승부는 정해져 있다.

얼마 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52조원 사회 기부를 약속했다. 새내기 아빠인 그는 금수저를 물고 난 딸에게 ‘미래’를 선물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아버지는 어떤 생일 선물을 준비하고 있나. 개천에서 용이 되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김원석 국제부장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