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동의 사이버세상]<21>시작도 끝도 없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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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테러집단은 나름대로 명분을 내세워 폭력을 자행해왔지만 파리 연쇄테러는 상징성보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철저하게 기획된 대량살상에 초점을 맞췄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지난달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서구 사회의 미신을 조롱하듯 지구촌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테러리스트의 무자비한 행위가 디지털 전파를 타고 강력하게 전달되면서 그들의 존재감도 함께 과시한 셈이 됐다.

파리테러에서 테러범들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이용해 정보기관 감시를 따돌리자, 서방 국가들은 IS 퇴치를 위한 군사적 연합전선을 가속화하면서 사이버작전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국가 대 국가의 대칭적 전쟁구도에 익숙한 이들의 군사적 책략은 국제법이나 교전규칙이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는 테러집단의 비대칭 위협 대응에 한계를 드러낸다.

그 와중에 해커집단인 어나니머스는 IS에 대한 사이버공격을 선포하고 IS의 트위터 계정 수천 개를 차단했다. 이들은 지난 1월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총기난사 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IS의 선전·선동 트위터 계정을 해킹해 목록을 공개했다. 어나니머스가 노리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차단하고 인터넷상에 흩어져 있는 흔적을 추적해 그 실체를 밝히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상 털기’다.

민족적·종교적으로 무장한 젊은 잠재적 테러리스트는 지구촌 곳곳에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테러집단과 지지자들은 아랍어와 영어 그리고 기타 언어로 된 웹사이트와 SNS로 포섭대상을 찾아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자폭 테러를 부추긴다. 눈부신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테러리스트가 불특정다수 혹은 특정소수를 가리지 않고 테러를 가할 역동적 환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테러리스트가 무기를 밀수하거나 폭발물을 가지고 국경을 넘나들 위험도 사라진다. 홀연히 공격할 현지에 나타나 폭탄 제조법과 설계도를 내려 받아 3D 프린터로 맞춤형 폭탄이나 총기를 제작한다. 마트에서 구입한 장난감 드론에 폭탄을 실어 불특정다수에게 동시다발적으로 테러를 가할 수 있다. 여기에 카메라와 위성항법장치(GPS)를 장착하면 특정인을 암살하거나 자폭시킬 수 있는 가공할 만한 살상무기가 된다.

서방이 자국 병사를 보호하기 위해 지상군 대신 드론을 포함한 공습 중심의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원거리에서 모니터로 이뤄지는 공격은 직접적인 살상이 아니어서 더욱 잔인해지고 민간인 피해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로 인해 이슬람의 서방을 향한 증오가 확대 재생산되면서 극단주의 무장세력을 확장시켜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테러집단은 서방의 정밀유도탄 대신 자살폭탄으로, 군사용 드론이 아니라 장난감 드론으로 맞설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테러행위의 실행전략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술력은 나날이 성장할 것이다. 많은 국가가 테러집단의 웹사이트나 SNS를 찾아 폐쇄하거나 침투하려고 애쓰겠지만 더욱 정교한 암호기술을 사용하고 복제사이트를 만들면서 이들을 따돌릴 것이다.

테러집단의 사이버공격 역량과 상관없이 사이버테러가 정보자산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해나가는 나라를 겨냥한 굉장히 효과적인 비대칭 무기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사이버무기를 사고파는 암거래시장이 있고 여기선 악성코드나 프로그램 취약점만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 청부공격도 가능하다. 값비싼 정규군을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더욱 저렴한 용병이 대체하듯이 사이버용병을 고용해 사이버테러를 감행할 수 있다.

사이버테러는 적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어렵고 대치전선도 모호하다. 테러 시작과 끝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끝없이 나타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이버전사들로 인해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내기는 더욱더 어려워진다. 보이지 않는 공격자들은 정규군과는 달리 지지 않는 것을 이기는 것으로 여긴다. 테러조직은 자신의 파괴능력을 확장시켜줄 엔지니어를 포섭해 차세대 사이버무장단체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IS가 지난 8월 간행물에서 대한민국을 미국이 주도하는 ‘십자군 동맹’에 포함된 테러 대상국으로 분류한 데 이어 최근 공개한 영상에서도 테러 대상국임을 재확인했다. IS가 지구 반대편에 있다고 안이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이버테러 가능성도 있다. 디지털 수준이 높을수록 물리적 테러보다 사이버테러가 훨씬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손영동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 viking@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