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Image](https://img.etnews.com/photonews/1506/697658_20150622150425_406_0001.jpg)
우리 속담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다. 싸움이 나쁜 것은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기 때문이다. 때린 놈은 죄책감에 다리를 오그리고 자고, 맞은 놈은 다리 뻗고 자는 법이다. 반면에 흥정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해준다. 상인이 원래 2만원에 팔 옷을 3만원으로 부른 뒤 2만5000원으로 깎아줬다고 치자. 상인은 5000원의 잉여가치가 더 생긴다. 소비자도 2만7000원까지 지불할 의사가 있었다면 3000원이 이득이다. 서로가 윈윈이다.
지상파와 유료방송이 정면 격돌했다. 소송만 60건에 달한다. 재전송료 협상 결렬로 지상파 송출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 같다. 그래도 매번 극적 타결이나 봉합 수순을 밟아 온 것을 보면 고도의 흥정 과정일 수 있다.
그런데 심상치 않다. 그간 지상파가 겁박하면 유료방송사업자는 움츠러들었다. 일종의 갑을관계 모드였다. 이번엔 다르다. 유료방송사업자가 ‘맞짱’을 뜰 기세다. 맞소송도 준비 중이다. 몇몇 사업자는 비상 임원회의까지 가졌다. 결사항전 의지를 다졌다는 전언이다.
한편으로 흥미롭다. 무소불위 지상파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상파 파워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일단 시청률이 시원찮다. 종합편성채널, tvN 등 대항마도 많다. 달리 보면 유료방송사업자 역시 위기라는 이야기다. 쥐도 막다른 길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게 마련이다. 지상파 시청률이 떨어지듯 유튜브로 대변되는 OTT(Over The Top) 열풍에 유료방송도 가입자 이탈에 비상이 걸렸다. 매년 인상하는 콘텐츠 사용료에 수익도 크게 악화됐다. 사생결단식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지상파가 응전에 나섰다. 모바일IPTV에 지상파 송출을 중단했다. IPTV 양방향 광고도 계약 위반이라며 소송 절차를 밟고 있다. 무료 VoD 공급 중단도 예고했다. 법적으로든, 비즈니스적으로든 ‘닥치고 공격’이다. 이쯤되면 흥정을 넘어섰다. 전면전이다.
전면전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감정이 지배한다. 안타까운 건 지상파나 유료방송이 ‘자폭’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송과 VoD 서비스가 중단되면 양측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시청자가 OTT와 같은 대안을 찾아 떠나버릴 수도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양방향 광고를 막은 행위 역시 뼈아프다. 가뜩이나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살아남으려 새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도 모자란 판국이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분수다. 이 싸움은 모두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기존 시장 균열을 호시탐탐 노리는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 사업자만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다.
끝이 보이는 싸움이다. 스스로 중단해야 한다. 당사자가 멈출 수 없다면 정부라도 뜯어 말려야 한다. 지금 급한 것은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서 함께 살아남는 지혜다. 상대를 짓밟고 연명해봤자 오래 못 간다. 시청자 저변을 넓힐 묘안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N스크린 시대가 되면서 소비자를 만날 ‘윈도’는 훨씬 넓어졌다. 기회도 그만큼 많다. 사생결단식 이전투구를 상생의 흥정 마당으로 바꾸는 리더십이 아쉽다. 싸우면 다 죽는다.
장지영 정보통신방송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