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는 우리 수출산업을 발전시키는 좋은 기회지만 자칫 ‘독이 든 성배’가 될 수도 있다. TPP 회원국 간 협상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르기 때문에 변수가 너무 많다. 박근혜정부에서 주요 FTA가 잇따라 성사됐지만 TPP에서 삐끗하면 정부 통상 역량이 도마에 오를 수 있다.
TPP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본 농산물 개방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일본은 미국과 협상에서 자국 주력산업인 공산품 이익 극대화를 꾀했다. 미국은 일본이 쌀을 비롯한 농산물 방어 수준을 낮추기를 바랐다. 양국 간 타협에서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가이드라인보다 높은 수준의 농산물 개방이 이뤄지면 상황이 어려워진다.
한국은 역대 모든 FTA에서 농산물을 최우선 보호 대상으로 삼았다. 양자 FTA에서는 적절히 주고받는 수준에서 농산물 보호와 공산품 개방이 가능했다. TPP 같은 다자간 FTA, 그것도 후발국으로 참여하는 협상은 다르다. 한국만 예외를 인정받기 어렵다. 정부가 TPP 기대감만 부풀려놓고 정작 마지막 단계에서 발을 빼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일본에 비해 취약한 것으로 평가받는 자동차, 기계, 소재부품 시장에서 우리 이익을 어떻게 취할지도 어려운 문제다. TPP에 참여하지 않는 중국·대만산 소재부품과 경쟁 여건이 좋아진다. 일본은 동일한 상태에서 경쟁한다. 아예 TPP에 불참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먼저 우리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
제현정 국제무역연구원 차장은 “일본과 한국은 산업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가 방어해야 하는 산업이 있다”며 “이들 산업 부문을 보완하는 것은 과제”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일본이 합의에 이르지 못해 협상이 장기화되는 것도 한국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협상 타결 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만 경우의 수가 너무 복잡해진다. 성급하게 공식 협상테이블에 들어갔다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면 스스로 발목을 잡은 셈이 된다. 이래저래 후발 참여국의 한계를 극복하는 게 쉽지 않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