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3월, 남북 특사 교환을 위한 실무대표들이 만난 자리에서 북한 박영수 조평통 부국장의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전국이 초긴장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당시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사재기한 제품이 두 가지였는데, 그 중 하나가 참치캔이었다. 대형마트에서 조차도 오전에 공장에서 출고된 참치캔과 라면이 점심시간이면 바닥나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참치캔은 ‘국민식품’으로 인식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영양가 높고 휴대가 편한 즉석식품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우리나라에 첫 선을 보인 것은 지난 1982년이다. 당시 미국에서 수산물통조림 하면 바로 참치캔을 떠올릴 정도로 참치캔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으나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오히려 당시 국내에 알려진 통조림이라 해봐야 꽁치통조림 정도였으며, 국민 대다수가 참치가 어떤 생선인지 전혀 알지 못할 정도였다.
사실 그 당시 참치는 국가의 부와 기술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소득 수준이 높아야 즐길 수 있는 식품이기도 했으며, 참치를 잡으려면 원양어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국력이 약한 나라는 어획 자체가 어려웠다. 또한 다른 생선에 비해 혈관이 많아 빨리 상했기때문에 참치 어업을 하려면 높은 수준의 냉동처리 기술을 갖춰야만 했다.
이런 시대 배경 속에서 1982년 원양업체를 운영하던 동원산업은 이전까지 원어(原魚) 형태로 해외에 수출해 오던 참치를 통조림으로 가공해 국내시장에 선보였다. 점차 선진국 형태로 변모해가는 국민들의 식생활 패턴과 일인당 GNP가 2,000달러 이상인 국가에서는 참치의 대중화가 가능하다라는 사실에 착안, 참치캔을 출시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내 최초 참치캔인 ‘동원참치 살코기캔’이다.
참치캔이 처음 출시될 때만 하더라도 참치캔은 지금처럼 장바구니에 손쉽게 담아 넣을 수 없는 고급식품이었다. 이는 동원의 마케팅 전략에서도 엿볼 수 있다. 동원산업은 최초 ‘동원참치’였던 제품명을 곧장 ‘동원참치 살코기캔’으로 바꾸는 작업을 감행했다. 우리나라 사람의 식습관이 닭고기보다는 쇠고기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참치의 이미지를 좀더 고급스럽게 쇠고기화해야 한다는 점 등을 반영했다. 이렇듯 참치캔은 ‘고급식품’, ‘선진국형 식품’의 이미지가 강했으며, 가격 역시 한 캔에 1,000원 정도로 당시 국민소득에 비해 비싼 편이었다.
동원산업은 당시 참치캔은 커녕 참치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던 소비자들에게 참치캔을 알리기 위해 애썼다. 전 임직원들이 평일에는 전국 매장을 돌며 직접 제품 진열 및 판매 사원으로 뛰었으며, 공휴일엔 유원지나 기차역 주변, 등산로 입구, 야구장 등에서 행락객을 중심으로 동원참치를 넣어 끓인 김치찌개 시식행사 등을 펼치며 제품 인지도를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후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양대 행사를 치르면서 국제적 위상이 오르고 국제수지 흑자를 내면서 자연스레 국민소득도 대폭 증가했다. 당연히 그 전까지 비싼 식품이던 참치캔은 국민소득 증가와 함께 점차 편의식품으로 자리잡아갔다. 도시락 반찬이나 여행 필수품 등으로 언제 어디서든 쉽게 들고 다니면서 뚜껑만 따면 쉽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원참치가 서서히 알려지던 1983년 중반, 동아제분, 해태가 잇따라 참치캔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동원참치 살코기캔’, ‘동아 씨치킨’, ‘해태 남태평양참치’의 3파전 양상을 띄게 되었다.
당시 동아제분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광고물량공세를 폈고, 해태는 영업력과 브랜드 인지도로 밀어붙였다. 동원산업은 지속적인 소비자테스트를 통해 제품력을 높이는데 총력을 다했다.
해태의 경우 브랜드 지명도와 기존 영업력에 더해 1984년 2월부터 때늦은 대대적 광고 물량공세로 나섰다. 하지만 그땐 이미 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한 동원산업이 시장을 선점한 상황이었다. 이외에도 후발업체로 유진물산의 ‘유진참치’, 화남의 ‘화남참치’가 있었으나 경쟁대열에 끼지 못했다.
이에 1983년 중반부터 이듬해 말가지 치열하게 펼쳐졌던 참치캔시장 쟁탈전은 2년 여만에 동원참치의 승리로 판가름 났다. 원료 확보에서부터 제품력까지 경쟁업체들에 앞섰던 결과다. 이러한 참치캔 시장 쟁탈전은 각 사의 대대적 광고 판촉활동으로 소비자들에게 참치캔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참치캔 시장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동원산업은 1984년 추석명절부터 참치캔 선물세트를 업계 최초로 개발하여 판매했다. 이해 추석 때만 30만세트 이상이 팔리며 선물세트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백화점, 대형마트 등에서 명절 선물세트로 없어서는 안될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30년이 지난 201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1인당 연간 약 4캔 이상의 참치캔을 소비한다. 세계인의 평균치가 연간 약 3개라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식문화 가운데에 참치캔이 얼마나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2000년대 들면서 참치캔은 건강식품으로서의 자리잡게 된다. 참치는 고단백 저지방 수산물로 칼슘, DHA, EPA, 단백질, 오메가6, 비타민 등 인체에 유익한 영양성분이 들어있는 건강식품이다. 그러나 이전까지는 이를 굳이 강조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보다는 원양에서 잡은 싱싱한 참치를 간편하게 캔에 담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면서 참치캔의 경쟁자로 다양한 편의 식품들이 등장했고, 동원F&B는 참치캔만이 갖고 있는 ‘건강성’에 주목하고 이를 부각시키는 데 노력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건강을 중시하는 ‘웰빙 트렌드’와 맞물리며 참치캔의 ‘제 2 전성기’를 만들어냈다. 참치캔 전체시장이 2010년 들면서 4,000억 원을 넘어섰고, 동원참치의 경우 지난해 국내 단일 수산캔으로는 사상 처음 50억 캔 판매를 돌파하는 역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참치캔은 고추참치, 야채참치, 짜장참치, 카레참치, 마요참치, 불고기참치 등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맛으로 장바구니 단골손님으로 자리하고 있다. 또한 간편함을 바탕으로 1인가구 시대를 맞아 더 적은 용량의 참치캔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듯 사회구조상 1인 소비자의 증가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고, 쇼핑의 행태는 모바일 기반으로 빠르게 변해갈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참치캔은 유리한 모습을 하고 있다. 게다가 통조림 속에 안전하게 담겨있어 유통기한도 매우 길다.
이처럼 앞으로도 참치캔은 우리 장바구니, 부엌 찬장 속에 단골손님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최근 식약처는 등푸른생선에 함유된 오메가-3, 비타민, 셀레늄 등 영양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특히 고등어, 꽁치, 참치캔 등 메틸수은 함량이 낮은 ‘일반어류’는 일주일에 400g까지 섭취를 권장했다.
이번 발표자료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참치캔에 대한 내용이다. 참치캔은 고등어, 꽁치, 명태, 갈치 등과 함께 수은 함량이 낮은 ‘일반어류’에 포함됐다. 실제로 참치캔에 사용되는 가다랑어는 작은 크기인데다, 횟감용으로 사용되는 다랑어류에 비해 메틸수은량이 훨씬 적다. (참치통조림 0.03㎍/g, 다랑어류 0.2㎍/g *1㎍(마이크로그램)=1/1,000,000g)
참치캔은 고등어, 꽁치 등 일반어류와 동일하게 수은함량이 적은 생선에 포함되면서 그간 수은 함량이 높은 식품으로 인식되던 오해를 풀 수 있게 됐다. 식약처 최대 권장량인 참치캔 400g은 100g 용량 4캔에 해당하는 양으로, 일반적으로 일주일 동안 먹는 것보다 많은 양이다.
온라인뉴스팀 on-new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