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고민 깊어지는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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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초에 발생한 대공황(Great Depression)은 20세기 가장 두드러진 사건이다. 1929년 10월 미국 ‘뉴욕주식거래소’ 주가 대폭락으로 야기된 공황은 1933년 말까지 세계를 장기침체로 몰아넣었다. 물가 폭락, 생산 축소, 경제활동 마비 상태가 연결되며 여파는 1939년까지 이어졌다. 기업도산이 속출하고 실업자가 늘어났다. 불황의 결과로 독일에서는 히틀러와 나치당이 정권을 차지했으며 2차 세계대전 도화선이 됐다.

대공황으로 모두 자유롭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도 ‘보이지 않는 손’의 조화로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던 자유 시장경제체제 믿음이 깨졌다. ‘시장의 자유’를 절대시하는 자유 방임적 자본주의가 파탄을 맞은 것이다.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은 가격이다. 가격이 경제 행위, 즉 상품과 용역의 구매와 생산을 조정한다. 소비자는 소득과 원하는 상품 가격, 선호도에 따라 어떤 상품을 얼마나 구매할지 결정한다. 소비자의 구매는 생산자에게 수입을 제공하고, 생산자는 그 수입에 의해 상품과 용역 생산에 필요한 자원의 수요자가 된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한 고리가 끊어지면 불안감 때문에 생산과 소비가 위축된다. 경제 전반적으로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deflation)’이 시작되는 것이다. 디플레이션 하에서는 주가는 하락하고 부동산 가격도 하락한다.

손해를 피하기 위해 소비자는 집이나 자동차와 같은 고가품 구매를 유예한다. 기업도 생산한 상품 가격이 하락하면 이윤이 감소하기 때문에 투자를 유보한다. 결국 가격하락은 생산 위축을 초래하고, 생산 위축은 고용 감소와 임금하락을 초래한다. 실업과 소득감소는 상품과 서비스 수요를 감소시켜 추가 가격 하락을 초래한다. 이 같은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결국 공황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소비감소와 투자위축이 이어지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됐다. 정부는 디플레이션으로 접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경제활성화책을 내놓았다. 46조원의 정책 패키지 중 남은 15조원에서 올해 활용하기로 결정했던 10조원을 모두 상반기에 투입하기로 했다. 개인이나 사업자에게 지급하는 보조금 및 지자체 교부세 등도 조기집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에 임금 인상을 촉구하는 방안도 지속 추진한다. 그러나 기업이나 가계 모두 불안감이 커 경제활성화 방안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12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졌다. 금리인하는 금융이용 부담을 낮춰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고 경기를 살리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금리인하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부분 생각이다.

금리 인하 시 줄어드는 가계 금리부담보다 금융소득이 줄어드는 소득 감소효과가 더 크다. 급격히 불어나고 있는 가계 부채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그리고 금리인하에 따른 소득증대도 부채 축소에 이용될 뿐 소비로 연결되기는 어려운 것도 함정이다.

더 큰 문제는 기업투자다. 금리를 인하해도 기업투자가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우리 기업은 사상 최대 규모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다. 통화를 더 공급한다고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국은행의 주름살이 깊어진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