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화학·정유사, 폭발에 노출된 등기구 수년간 사용

국내 주요 발전사를 포함해 화학·정유 업계가 폭발 위험에 노출된 등기구(HID 전등류)를 수년간 사용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방폭 업체가 정부가 정한 규격에 미달된 제품을 속여 납품했기 때문이다.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고객사들은 이 같은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5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감사원은 최근 국내 주요 방폭 업체들이 지난 5년간 기준 미달의 방폭 등기구를 발전소와 화학·정유 공장에 납품한 사실을 적발했다.

이들 방폭 업체는 인증기관인 한국산업기술시험원·가스안전공사·안전보건공단에는 정상 제품으로 인증(KS C IEC60079-1 규격 등)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미인증의 다른 제품을 공급한 것이다. 적발된 업체 제품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약 50%로 주요 발전소를 포함해 LG화학 공장, 금호석유화학 공장, 포스코, OB맥주 공장 등에서 사용 중으로 알려졌다. 이들 사업장은 지금도 자사 설비에 사용 중인 등기구가 위험에 노출된 불량 제품인지 모르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정한 규격대로라면 방폭 등기구는 내압방폭구조(EXd)를 갖춰야 한다. 용기 내부에서 가스가 발생하거나, 폭발이 발생할 경우 용기가 그 압력에 견디도록, 외부의 휘발성 공기 환경에 인화 발생을 애초부터 차단하는 구조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납품 원가를 줄이기 위해 등기구를 감싸는 유리(Glass Globe)의 두께가 기준치보다 얇은 것을 사용했다. 감사원이 지난달 한국산업기술시험원·가스안전공사·안전보건공단을 통한 파괴 시험에서 이들 제품은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감사원 공공기관 감사국 관계자는 “국내 일부 업체가 기준 미달의 방폭 등기구를 5년간 발전사 등에 공급한 사실을 적발해 국내 인증 3개 기관에서 재검사한 결과 기준치 미달 제품임을 확인했다”며 “최종 내부 절차를 거쳐 다음 달께 최종 조치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에 적발된 등기구뿐 아니라 발광다이오드(LED) 등에도 불량 제품이 사용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전 방위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는 “전기를 점등할 때 발생하는 미세한 스파크는 일반적으로 문제가 없으나, 실내에 휘발성이 있으면 폭발 위험성이 매우 높아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다”며 “이들 방폭 업체는 백열전구뿐 아니라 LED까지 공급하고 있어 다른 제품군은 물론이고 인증기관과의 유착 여부도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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