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현대판 `빨간 깃발 법`

Photo Image

증기 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영국은 159년 전 ‘빨간 깃발 법(Red Flag Act)’이란 희한한 법을 만들었다. 마차가 55m 전방에서 붉은 깃발을 꽂고 달리면 자동차는 그 뒤를 따라가야 했다.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 6.4㎞로 제한됐다. 자동차산업에 위협을 느낀 마차 업주들이 로비를 벌이고 기득권은 이를 수용한 결과였다. 결국 영국은 ‘아우토반’을 깔고 질주한 이웃나라 독일에 자동차 산업 주도권을 넘겨줬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빨간 깃발 법 데자뷰’가 종종 목격된다. 기술 혁신이 낳은 신서비스와 기존 법체계가 충돌하면서 곳곳에서 마찰음이 들린다.

지난주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가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소환됐다. 이 대표의 혐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카카오그룹에서 아동음란물이 유통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온라인 서비스 대표가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사례는 처음이다.

파장이 일파만파다. SNS와 온라인에서 음란물이 유통되는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카카오톡 대표가 소환되면서 ‘표적 수사’ 논란이 불거졌다. 다음카카오가 지난 10월부터 수사기관의 메신저 감청영장에 불응하자 사법당국이 보복성 수사에 착수했다는 의혹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음란물이 유통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이를 알고도 방치했다면 이 역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경찰 수사는 이 때문에 표적 수사 의혹에도 정당성이 부여됐다.

그런데 딜레마가 있다. 현존하는 기술로 SNS나 온라인 서비스 공간에서 암암리에 유통되는 음란물을 모두 막을 수 있는 기술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기업인 구글도 이 문제를 여전히 숙제로 남겨놓고 있다. 구글이 인수한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에는 하루에도 수천 건의 음란물이 올라온다. 유튜브는 이를 막기 위해 사전 필터링 기술을 도입하고, 사후 모니터링을 강화했지만 역부족이다. 음란물을 삭제하면 인터넷 주소(IP)를 수시로 옮겨가며 다시 서비스하는 ‘숨바꼭질’이 이어진다. 역설적이게도 기술의 발달이 법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사법당국이 현실과 괴리된 법 집행을 고수한다면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몇몇 기업을 시범케이스로 옭아매거나, 아니면 모든 온라인 기업을 범죄 집단으로 단죄하는 것이다. 물론 후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전자를 선택한다면 ‘표적 수사’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선별적 처벌이 ‘현대판 빨간 깃발 법’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법당국이 우리나라 법이나 규제에서 벗어난 해외 온라인 서비스를 처벌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 온라인 공간에서 가장 많은 음란물이 유통되는 곳은 ‘유튜브’나 해외에 서버를 둔 SNS인데도 말이다. 결국 국내 업체만 처벌받으면서 인터넷 산업의 주도권을 이웃나라에 빼앗길 수 있다. 시대를 역행한 ‘셧다운제’는 잘나가던 한국 게임산업을 위축시켰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 없는 노릇이다. 현실에 맞지 않는 법과 제도라면 현실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 인터넷 산업을 보호하고, 사법당국의 권위를 회복할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빨간 깃발 법’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장지영 정보통신방송부 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