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아베와 버냉키, 초이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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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제로금리를 도입하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세계적인 유행어가 돼버린 양적완화 정책의 연장선에서 현행 연 2.0%인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하면 소비가 살아나고, 주택경기가 활성화될까. 대기업 역시 사내유보금을 설비투자에 사용할까.

가능성은 낮다. 그 동안 정부는 돈을 많이 풀었다. 하지만 그 많은 돈은 종적을 감췄다. 5만원권 표지모델인 신사임당은 꼭꼭 숨었다. 5만원권 10장을 찍으면 2∼3장 정도만 환수되고, 나머지는 깜쪽같이 지하창고 및 개인금고로 들어간다.

가계부채 1000조 시대다. 이러다 보니 ‘빚으로 지은 집’은 늘어난다. 중산층과 서민들은 빚의 무게에 눌려 소비여력이 없다. 하지만 정부는 금리인하 이후 정책에 대한 애프터서비스(AS)에는 관심이 없다.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가산금리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이 없으니, 실질적 대출금리 인하 효과는 없다. 이자부담은 완화되지 않는다.

이 같은 현실에도 정부는 세수부족을 이유로 조세저항이 상대적으로 적은 간접세를 올린다. 실질임금상승률 마이너스 시대를 맞아 지갑은 더 쪼그라든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해법은 감세다. 국가 가계부를 새로 짜야 한다. 국민의 혈세가 지출되는 부분을 전 영역에서 30% 줄이고, 이에 맞게 중산층과 서민들이 부담하는 세금을 낮춰야 한다.

소위 ‘부채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선 세금을 덜 걷는 게 유의미한 대안일 수 있다. 구조적으로 정부가 세금을 거둬들일 때는 장애물이 없지만, 지출되는 과정에서는 배분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아랫돌 빼서 윗돌을 강화시키는 시스템인 것이다. 상대적으로 사회경제교육적 지위가 높은 계층부터 혜택을 볼 가능성이 높다. 한해 3000억원이 넘는 국고보조금이 허투루 쓰여지고 있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게다가 매년 연말이면 할당받은 예산 중 불용액 처리를 고민하는 부처가 한 두 곳인가. 멀쩡한 아스팔트 포장공사비는 수많은 학생들의 학원비였지 않았을까.

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각 나라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경기침체는 공히 안고 있는 숙제다. 미국을 제외한 상당수 국가가 ‘디플레이션(D)의 공포’에 직면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 미국의 움직임은 한국 경제를 더욱 불안케 만든다.

우리 수출은 일본 엔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의 성장둔화세도 중장기적으로 악재다. 여기에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우리 수출전선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우리경제가 구조적 장기침체 국면으로 빠져들면 큰일이다.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버냉키 전 의장이 주도한 미국의 양적완화와 잃어버린 20년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양적완화 사이에서 한국형 모델을 찾아야 한다.

초이노믹스의 양적완화라는 처방전이 효험을 보기 위해선 이제 국가경제의 체질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지금처럼 ‘나는 안 쓴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라는 구조를 깰 수 있는 초이노믹스 2라운드를 기대한다. 부채의 종말이 필요하다.


김원석 글로벌뉴스부 부장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