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7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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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틸라 더 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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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첼이 다시 정신을 들었을 때, 아픈 배의 통증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신녀의 방은 난장판이었다. 불타버린 낙원이었다. 신녀는 없었다. 에첼은 겨우 기다시피 그곳을 빠져나왔다. 하늘이 저절로 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에첼은 불안정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왕자님, 아틸라.”

에첼은 서둘렀다. 서둘러 아틸라가 머물고 있을 막사로 향했다. 그러나 서둘러 달리는 그녀를 무엇인가 막았다. 에첼은 앞으로 엎어졌다. 정신이 멍멍했다. 얼굴은 땅바닥에 쳐박힌 채 코뼈가 부러졌고 얼굴이 찢어졌다. 그녀는 패대기쳐진 허약한 짐승꼴로 강렬한 경련을 일으키며 겨우 눈을 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누군가의 희미한 형체를 보았다. 제대로 보려고 눈알에 힘을 주었다.

“아. 오에스테스...”

그녀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빨도 몇 개 부러졌는지 입 안에 핏물이 왈칵왈칵 쏟아졌다. 그러나 배는 아프지 않았다. 고통속에서도 그녀는 그나마 어슬프게 안심했다.

“역사를 가로막지 말아라.”

에첼은 아직도 한없이 경련하고 있었다.

“당신이야 말로 역사를 가로막지 마십시오.”

에첼은 겨우 말을 뱉었다.

“역사의 운명을 아에테우스가 넘겨받지 못했다. 바로 내가 넘겨받았다. 역사는 이제 내가 지휘한다.”

에첼은 비실비실 떨며 손을 길게 뻗었다. 기어서라도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 역사의 발악은 결국 멈춰버렸다. 오에스테스는 자신의 갖고 있는 무기로 에첼의 머리를 가혹하게 내리쳤다.

“죽어!”

에첼은 그대로 고개를 흙더미 속에 박았다. 오에스테스는 자신의 무기를 더러운 듯 버리고 힘찬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또다른 탐욕의 또다른 시작이었다. 느닷없는 시작은 아니었다. 위험한 시작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한 줄기 잠깐의 바람일 것이다.

발렌티니아누스 황제가 성 지오반니 인 라테란노 교회 앞 광장에 도착했다. 그는 말에서 내릴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날씨도 좋지 않아서 귀찮았다. 그저 황제로서의 간단한 의무만 하면 될 뿐이었다. 어머니 플라키디아가 나무랐다.

“내려서 병사의 어깨에 손을 얹어 네 자비로움을 알려라.”

플라키디아는 앞을 보고 거만하게 웃고있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어머니. 저들은 원래 멍청해서 제 모습만 봐도 영광스러워할 겁니다. 제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날씨 한 번 더럽습니다. 빨리 가서 따뜻한 물에 목욕이나 하고 싶습니다.”

“저들은 너를 위해 싸울 병사들이다. 너를 위해 존재하는 미개하고 멍청한 것들이란 말이다.”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플라키디아를 쳐다보았다. 서로에게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때 페트로니우스가 다가왔다.

“폐하. 직접 병사들을 보셔야합니다.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발렌티니아누스는 할 수 없이 말에서 내렸다. 그의 피등피등한 몸뚱아리는 말에서 내리기도 힘들었다. 페트로니우스는 그의 큼지막한 엉덩이를 도왔다. 그의 몸뚱이에서 살찐 돼지의 똥내가 났다.

발렌티니아누스는 뒤뚱거렸다. 페트로니우스는 웃었다. 묘한 웃음이었다. 발렌티니아누스는 제일 앞에 도열한 병사들의 어깨에 살짝 살짝 손을 얹으며 지나갔다. 그의 어줍짢은 황제 행세에 병사들은 예의는 갖추었다.

그때였다. 뒤에 있던 페트로니우스가 발렌티니아누스의 등을 긴 칼로 푹 찔렀다.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순간 피를 토했다. 방금 병사를 격려하던 손을 한 병사의 어깨를 찢어질듯 잡았다. 페트로니우스는 다시 힘을 주어 더 깊게 더 깊게 찔렀다. 긴 칼은 발렌티니아누스의 가슴을 뚫고나왔다. 병사는 자신의 어깨를 힘껏 잡고있는 발렌티니아누스의 손을 떨치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뒤로 물러났다.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앞으로 엎어졌다. 저만치 있던 플라키디아 황후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더 이상 소란은 없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조용해졌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어떤 병사도 나서지 않았다. 고함도 없었다. 비명도 없었다. 황제의 몸뚱아리에서 피가 강이 되어 흘렀다. 그간의 피묻은 잔인한 역사였다. 페트로니우스는 칼을 높이 쳐들었다. 그때서야 병사들이 고함을 질렀다. 각자의 무기를 들고 가당치 않은 박해의 우리를 벗어난 짐승의 자유를 질렀다.

“아에테우스. 아에테우스.”

병사들은 아에테우스의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평생 모시던 장군을 위해 아주 명쾌한 복수를 이루어냈다.

플라키디아는 아에테우스를 부르짖는 병사들을 보고 그만 오줌을 지렸다.

“그는 죽은게 아니야.”

병사들의 고함은 점점 커지며 함성의 강이 되어가고 있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