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그의 이름은 아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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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흔과 에첼은 너무도 선명한 저승의 강제적인 과정에 넋을 놓고 있었다. 달군쇠를 던져 나머지 오형제를 죽인 자는 다름아닌 아틸라가 보낸 그 자객이었다. 그가 만든 잠시 가상의 저승 공간은 미사흔과 에첼의 이승을 완전히 차단하려 했다. 자객이 달군쇠를 겨누며 미사흔과 에첼에게 걸어왔다.
“넌 누구냐?”
미사흔은 투박하게 물었다. 목소리가 투박하게 떨렸다.
“아틸라 왕자님의 명령인가요?”
에첼은 차라리 죽고싶었다. 자신의 사적인, 공적인 모든 정체성의 원형질이 완성되기 직전 사라지고 있었다.
아, 그간의 세월은 얼마나 가슴 아픈가? 여자로서 끔찍한 경험을 하고도 수고로이 살았던 에첼이었다. 분열되지 않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의 명령이 뭐가 중요합니까? 당신들은 곧 죽을텐데.”
그는 피와 살이 섞인 더러운 모래바람을 너무 많이 쳐먹은 음성이었다.
“그럼, 그때 나를 왜 살렸습니까?”
“왜 우리를 도왔소?”
에첼과 미사흔은 두서가 없었다.
“아틸라님이 저를 보낸건 사실입니다. 미사흔 왕자님을 도우라고 하셨죠. 하지만 진짜 나를 보낸건 오에스테스 장군입니다.”
“오에스테스, 그 자는 아틸라 왕자님의 최측근인데? 어떻게...”
에첼은 믿을 수가 없었다. 잘못된 삶의 자취였다.
“아틸라 왕자님은 결국 로마를 굴복시킬겁니다.”
자객은 오래된 배반의 똥냄새를 배설하고 있었다.
“그런데요? 그런데 왜 이런 배반을 저지르는겁니까?”
“아틸라 왕자님은 로마를 굴복시킬 뿐 다스리지는 못할거라는 말입니다. 항상 적은...”
미사흔은 인내심을 버리고 자객의 말을 잘랐다.
“자신의 형제와도 같은 사람이 배신하기 마련이지.”
“아틸라 왕자님이 위험하십니까?”
에첼은 다급했다. 아틸라는 그녀의 삶에 변방이 아니었다. 중원도 아니었다. 그냥 그가 그녀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오늘 나한테 죽을거라고 말했을텐데?”
자객은 한 번도 닦아보지 않은 자신의 마음처럼 누런 이빨을 드러냈다.
“전 갈겁니다. 아틸라 왕자님과 저는 한 몸입니다.”
미사흔이 에첼을 번득 보았다.
“아틸라의 이름과 에첼의 이름은 같습니다. 우리의 몸은 두 몸이지만 하나입니다.”
자객이 달군쇠를 들었다. 순간 에첼이 미사흔을 달군쇠 쪽으로 획 밀었다. 미사흔이 가까스로 달군쇠의 뜨거움 살기를 복부에 느끼고 있었다.
에첼은 훌쩍 도망갔다. 그러자 에첼에 대한 서운함도 없는 미사흔은 달군쇠를 자객의 오른팔에 박았다. 자객은 윽 소리도 내지 못하고 푹 쓰러졌다. 그의 몸이 타들어가는 불길이 되었다.
“넌 나와 함께 간다. 내가 가는 그곳에서 함께 죽자.”
미사흔은 달군쇠로 자객의 나머지 왼팔에도 박았다. 자객은 이제 두 팔을 쓰지 못하는 병신이 되었다. 미사흔은 에첼에게 소리질렀다.
“에첼. 에첼...당신의 꿈이 무엇이더라도, 나의 꿈이 무엇이더라도, 우리의 꿈이 무엇이더라도, 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에첼은 이미 저만치 달려가서 아득히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꿈은 끝나는가?”
아틸라는 오에스테스와 의논중이었다.
“아에테우스가 황제가 될 정도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도 전열을 정비하고 있을게 뻔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아틸라가 그를 비스듬히 보았다.
“그때 철수하지 않고 아에테우스를 쫒았다면 승산이 있었을겁니다.”
아틸라는 옷을 챙겨입었다. 갑옷이었다. 무장하고 있었다.
“아에테우스도 나를 쫒지 않았다.”
“네, 그것도 이상하긴 합니다.”
오에스테스는 아틸라의 실수로 몰아가고 있었다.
“아에테우스는 그 이유로 반드시 죽음을 당할 것이다.”
오에스테스는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플라키디아, 그 여자는 아에테우스를 이용할 뿐이야. 또 이번에 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니 더더욱 가만두지 않겠지.”
오에스테스는 집요했다. 이런 집요함이 그의 내면의 자라고 있는 오래된 배반의 원형질을 들키고 있었다.
“아에테우스는 쫒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