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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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전쟁, 전쟁, 전쟁

8.

“앞으로!”

눌지의 군대는 박씨와 석씨들이 자리를 틀고 앉아있는 옛 가야의 땅을 침공중이었다. 용병을 사들여 사병을 만들었던 그들은 생각보다 먼저 도착한 눌지의 군대를 보고 혼비백산했다. 그러나 탐욕으로 뭉친 그악스런 용병들은 만만치 않았다. 산전수전 다겪으며 벼라별 전투를 다 겪은 용병들에게 눌지의 군대는 허약하기 이를데 없었다. 눌지의 군대는 픽픽 나가떨어졌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다. 패배의 비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휘리릭 하늘에서 댓이파리들이 회오리를 돌며 막무가내로 내려왔다. 그 중심에서 귀신같은 전사들이 툭툭 떨어졌다. 댓잎귀걸이를 단 전사들이었다. 그들은 신출귀몰한 솜씨로 박씨와 석씨들의 용병들을 단숨에 제압해나갔다. 박씨와 석씨의 용병들이 바람에 그저 떨어지는 댓이파리처럼 날아갔다. 눌지의 군대는 멍하지 보고만 있었다.

뒤범벅이었다. 피의 뒤범벅이었다. 살의 뒤범벅이었다. 뼈의 뒤범벅이었다. 아틸라 진영의 20만 대군과 아에테우스 진영의 20만 대군은 서로 미치도록 저주하며 격돌했다. 바로 카탈라우눔(Catalaunum)에서 격돌했다. 뚝뚝 떨어진 머리통은 달리는 발에 걸리적거렸다. 찢어진 팔다리를 무기삼아 싸우는 전사도 있었다. 서로 피와 살과 뼈로 뒤범벅이 된 그들은 서로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죽일때가지 싸웠다. 죽었을지 모를 살았을지 모를 쓰러져있는 모든 것들은 다시 죽였다.

아틸라는 직접 싸웠다. 그는 달리는 자신의 한혈마 위에서 칼을 높이 들어 적군의 머리통 중심을 뚫었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아무데나 획획 던졌다. 적군들은 아틸라가 머뭇거림 없이 떠오르면 겁부터 먹고 우왕좌왕했다. 어느새 아틸라는 적군의 머리통을 찍으며 뼈까지 부수었다. 가히 완강하고 정확했다. 그는 좀처럼 웃지 않았다. 표정도 없었고 소리도 없었다. 그래서 벌써부터 무서웠고 아직도 무서웠다.

“포로를 만들지 마라.”

아틸라는 아에테우스를 찾고 있었다. 그의 눈은 절대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저승의 즉각적인 호출이었다.

“공격하지 마라. 수비하라.”

악을 쓰는 아에테우스는 아틸라와 눈을 마주쳤다. 심장이 뜨거워졌다. 죽음의 유혹이었다. 아틸라는 심장이 차가워졌다. 삶의 유혹이었다. 그는 아에테우스가 죽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오늘, 카탈라우눔에서 아에테우스는 죽는 날이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았다. 아에테우스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삶의 허영심이 발동했다. 순식간에 아틸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여기 저기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했다. 아틸라는 아에테우스를 부리나케 쫒았다. 그런데 좀처럼 그 간격이 좁혀지지 않았다. 아틸라는 자신의 불길한 꿈과 혼동하고 있었다. 그를 쫒으며 땀이 났다. 아에테우스는 그래도 앞서 갔다. 아틸라는 쫒고 또 쫒았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화살이 아에테우스의 머리통을 옆으로 길게 뚫었다. 그때 보았다. 아틸라는 보았다. 그는 아에테우스가 아니었다.

아틸라는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적진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위험했다. 이번에는 어디선가 급작스레 나타난 아에테우스가 아틸라를 쫒았다. 그때였다. 콘스탄티우스, 오에스테스, 에데코, 에르낙이 절체절명의 순간을 찢으며 나타나 아틸라를 동서남북으로 에워쌌다. 아틸라는 그렇게 적진에서 빠져나왔다.

“모조리 살육하라,.”

아틸라의 고함은 카탈라나움 벌판을 길게 돌았다. 그들 모두에게 평생의 시간이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었다. 그렇게 긴긴 싸움이었다. 그렇게 긴긴 죽음이었다. 꼬박 하루 동안이었다. 거의 40만 명이 몰살했다. 아틸라의 명령대로 포로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극소수의 부상자만 있을 뿐 살아남은 자는 거의 없었다. 신녀가 아틸라 앞에 다시 섰다.

“철수하십시오.”

아틸라는 말이 없었다. 에르낙이 설득에 나섰다.

“우리는 모든 전선에서 공격했지만 함정을 파고 매복하고 있던 아에테우스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끝내 전세를 뒤집지 못했습니다. 군사들이 거의 없습니다.”

“판노니아로 간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 뿐이다.”

갑자기 아틸라가 에르낙에게 물었다.

“아에테우스는 확실히 죽었는가?”

“죽지 않았습니다.”

아틸라는 신녀를 쳐다보았다. 신녀는 흔들림이 없이 건방지게 꼿꼿했다.

콘스탄니우스가 말했다.

“서고트족의 왕 테오도리크가 죽었다고 합니다.”

“아에테우스 장군 만세, 만세.”

로마군은 훈족과의 싸움에서 무승부였지만 그들에겐 놀라운 성취였다. 훈족과 싸워서 패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