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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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전쟁, 전쟁, 전쟁

6.

아틸라는 자신의 한혈마 위에 올랐다. 그는 프랑스 상파뉴 아르덴(Champagne-Ardenne)을 쳐다보고 있었다. 햇빛이 부서지며 파편을 만들며눈을 아프게 찔렀다. 아틸라는 눈을 부릅뜨고 파편을 받아들였다. 눈알이 벌개졌다. 핏빛이었다. 어쩌면 전쟁의 결과였다.

그는 늘 그렇듯 전장터에 자신의 신녀(神女)를 데리고 왔다. 그의 조상들이 대대로 그러하듯 전쟁이 시작되기 전, 항상 신녀에게 전쟁의 결과를 예언해주기를 명령했다. 신녀는 훈족의 전통대로 요령을 흔들며 소 내장과 소뼈를 끈질기게 못살게 굴었다. 검은 눈동자가 없는 신녀의 흰자위는 범접하기 힘든 종말이었다. 아틸라는 전혀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의 쭉 째진 눈빛은 긴장과 초조함으로 베일듯 예리한 칼날이 되어있었다.

아틸라는 사람 키만한 덤불 숲을 헤쳐갔다. 그는 미사흔을 쫒고 있었다. 저만치 앞에 달려가고 있었다. 아틸라가 아무리 날으듯 달려도 그와의 간격은 좀체 좁혀지지 않았다. 아틸라와 미사흔은 절대 만나지 못할 운명인가? 미사흔의 손에는 황금보검이 빛의 실타래를 풀고있었다. 역사의 슬픔을 쓰다듬는 신기루인가? 아, 그러나 진짜 황금보검이었다. 아버지 문주크가 판노니아 평원에서 실라의 여인인 어머니에게서 받은 황금보검이었다. 또한 아틸라가 실라의 미사흔에게 보냈던 황금보검이었다. 그 황금보검이 ‘검이 온다’는 전설을 찢고 아틸라에게 다시 와야만 했다. 미사흔이 몸을 돌려 아틸라에게 황금보검을 주어야했다. 그런데 미사흔은 자꾸 배반의 등을 보인 채 앞으로 가기만 했다. 아틸라는 소리쳐 불러보았다. 하지만 미사흔은 그저 앞으로 달렸다. 아틸라는 순간 역사의 위험한 느닷없는 매복에 걸려들었다. 후두두둑 아래로 끝없이 추락했다. 아틸라가 침대에서 벌떡 일러났다. 그의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아틸라는 어젯밤의 불길한 꿈을 생각하며 어쩐지 불안했다. 드디어 신녀가 방자한 입을 열었다.

“훈족이 큰 재난을 당할 것입니다.”

아틸라는 충격으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뱀이 되어 몸을 풀었다. 콘스탄티우스 침묵을 발로 걷어차버렸다.

“자세히 말하라,”

그러나 아틸라가 손으로 그를 제지했다. 아틸라는 신녀를 빤히 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없는 신녀는 주눅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신의 신탁을 전하는 소모품일 뿐이었다.

“아틸라 제왕님이 큰 재난을 당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적군의 지휘관이 전투에서 죽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군 또한 승리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아틸라는 비로소 조심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파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미사흔의 진짜 검이 오지 못한단 말인가? 우리 조상의 검이다. 위험하고 느닷없는 족속의 검이다. 나의 형제여, 왜 오지 않는가? 나의 꿈을 부수려는가?”

아틸라의 얼굴은 어두웠다.

“적군의 지휘관이 죽는다면 바로 아에테우스구나. 이 또한 나의 형제여.”



미사흔은 다시 명사산을 보고 있었다. 저만치 복호가 보였다. 복호는 어느새 세(勢)를 불렸는지 수 십의 군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미사흔과 복호는 대치중이었다. 어차피 두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실천할 뿐이었다.

“형제여. 나는 이미 너를 죽이기로 작정했다. 마지막으로 너의 생애를 떠올리며 죽어라.”

미사흔은 이제 정(情)에 부대끼지 않았다.

미사흔이 먼저 달렸다. 그의 몸사위가 그리도 가뿐했다. 나머지 오형제들도에첼도 자객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앞다퉈 앞으로 달렸다. 저만치 복호도 달려왔다. 아틸라가 보낸 자객은 선 채로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파르티안이다.”

복호와 복호 일당은 자신들 보다 한 척이나 높은 위치에서, 말달리며 전광석화로 쏘는 화살을 피할 길이 없었다. 미사흔과 복호는 드디어 쨍 부딪혔다. 칼이 여기저기 쨍 부딪혔다. 복호 일당은 비실비실 짖지도 못하는 개새끼처럼 널부러지기 시작했다. 아직 죽지 못하고 몸땡이가 두 동강 난 자들에게 에첼은 그간의 굽이굽이 고단한 시간을 가르고 칼을 꽂았다. 나머지 오형제들도 그들의 몸땡이를 토막쳤다. 피가 튀었고 뇌가 튀었다. 미사흔은 복호의 칼을 쨍 날려버렸다. 복호는 소용없는 도망을 시작했다.

“복호, 이번엔 아니다. 이번엔 아니다.”

미사흔은 벼락같은 소리는 복호의 손모가지를 잘랐다. 그가 갖고 있던 황금보검이 날아와 미사흔에게 안겼다. 그때 에첼이 뒤에서 그의 목에 칼을 수직으로 꽂았다.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나머지 오형제가 다가와 그의 머리를 깔끔하게 잘랐다. 미사흔은 황금보검을 품에 안았다. 눈물이 났다.

“나는 아틸라를 너무 잘알고 있다. 나는 훈족의 전투방식을 잘알고 있다.”

“나는 아에테우스를 너무 잘알고 있다. 그는 훈족의 전투방식을 잘알고 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