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44회

Photo Image

6. 세상의 절반을 달라

4

“칼 등은 일자형이고 칼집 입구는 역사다리꼴이고 그 옆은 산(山) 모양이네. 칼집은 끝이 넓으며 최상급의 석류석과 최상급의 로마 유리를 박아 아름다움을 더하게. 또한 칼의 표면은 월계수무늬와 태극무늬로 장식하게. 그리고 마지막, 그 검 안에 진짜 철로 만든 아틸라 제왕님의 검을 넣어야 하네. 그 검의 이름은 황금보검이라고 불러야 하네.”

대장장이는 집중해서 세심히 들었다.

“황금보검은 우리가 아는 모든 세상을 평정할 검이네.”

대장장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 평생의 가징 위대한 검이 될 것입니다. 후세에 남도록 만들 겁니다.”

에르낙은 그에게 허연 보따리를 툭 던졌다. 대장장이가 그 보따리를 열었다. 황금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는 두려운 눈빛으로 에르낙을 보았다. 지나치게 많은 황금이었다. 목숨을 달라는 말이었다.

“황금보검은 아무 대가없이 만들겠습니다.”

그러나 에르낙의 눈빛은 선연한 핏빛이 돌았다.

“비밀을 지켜주게. 황금보검은 전설의 검이 될 것이네. 그렇다면 사람들의 주둥이를 타면 안되겠지.”

대장장이는 숨을 꼴깍거리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에르낙이 돌아가고 남은 풍경은 캄캄했다. 대장장이는 한참을 캄캄함과 씨름하다가 그의 아내를 불렀다. 아내에게 황금이 든 보따리를 주었다. 아내가 엄청난 양의 황금을 보고 술에 취한 양 비틀거렸다.

“이 보따리를 갖고 고향에 가 있어. 애들도 데려가. 난 뒤따라 갈게.”

그의 음성 또한 캄캄했다.

“왜요? 당신은요?”

“이 정도의 황금이면 내 목숨 값인거야. 어서 가. 어서.”

대장장이는 아내를 슬프게 재촉했다. 이제 느닷없는 역사를 만들 황금보검 앞에 당당히 설 차례였다.

아틸라는 바길라스 앞에 서있었다. 그의 목에는 황금보따리가 턱 걸려있었다. 아틸라가 칼로 그의 목에 걸린 보따리를 쭈욱 찢었다. 바길라스는 털석 주저앉으며 오줌을 질질 지렸다. 아마 자신의 목을 따는 줄 알았다.

“용, 용서해주십시오.”

아틸라는 그의 목에 칼집을 넣었다. 가늘게 넣었다. 피가 살포시 서렸다. 그의 목은 칼집으로 벌집이 되어가고 있었다.

“네 평생 소원대로 황금을 깔고 죽게 되었구나. 널 다시 나에게 보내다니.”

바길라스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주위로 훈의 전사들이 칼과 도끼를 들고 다가왔다. 바길라스는 똥까지 지렸다. 차마 못 볼 꼴이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아틸라 제왕님께 사절단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만.”

아틸라는 서릿발이었다. 훈의 전사들이 멈추었다.

“제왕님, 아틸라 제왕님.”

“내 너를 용서하겠다.”

바길라스는 자신이 이승의 세계로 편입될지 모른다는 착각으로 갑자기 기뻤다. 얼마 전, 아틸라의 용서로 이승의 세계에 힘겹게 편입된 콘스탄티우스와 에데코가 다시 아틸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다시 한 번 아틸라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아틸라 제왕님께 충성을 바칩니다.”

오에스테스도 무릎을 꿇었다. 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될 아들, 그의 아들 로물루스도 무릎을 꿇었다. 그 옆으로 얼마 후, 오에스테스를 죽이고 그의 아들 로물루스의 로마제국을 멸망시킬 에데코의 아들, 오도아케르도 무릎을 꿇었다.

“충성을 바칩니다.”

아틸라는 그들 모두에게 말했다.

“누구는 내가 잔인하다고 말한다. 맞다. 내가 꿈꾸는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용서하기로 했다. 우리 훈을 무식한 오랑캐, 짐승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우리는 그저 대(大) 중원을 떠돌다가 도망 나온 족속도 아니다. 그저 먹을 것을 것이 없어서 약탈하는 족속도 아니다. 그저 파괴를 일삼는 족속도 아니다. 우리 훈은 위대한 황금의 제국을 건설할 것이다. 로마는 세상의 중심에 있다. 그 중심을 뚫고 세상의 끝까지 도달하면 나의 위대한 황금의 제국의 지도가 완성될 것이다. 나는 바길라스같은 놈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용서하지 못할 단 하나의 적은 바로 로마다. 바길라스, 너를 용서하는 이유는 단 하다. 다시 동로마로 돌아가라. 가서 내 말을 전하라.”

바길라스는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테오도시우스의 제안을 모두 수용할 것이다. 하지만 호노리아를 내놓으라고 말하라. 만약 내놓지 못한다면 신의 징벌이 따를 것이다.”

아틸라는 사실, 동로마에 관심이 없었다. 아틸라는 서로마를 속이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었다.

“그렇다. 네가 직접 모시고 와야 한다.”

바길라스는 어쨌든 당장 죽지 않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는 일어났다. 오줌과 똥으로 엉망이 된 바지는 스스로 또 하나의 삶에 취한 남자에게 아무렇지 않았다.

바길라스는 또 달려나갔다. 그 어느 저승으로 달려 나갔다. 오에스테스가 걱정했다.

“동로마는 내버려두시는 겁니까?”

“이미 보았듯이 동로마는 테오도시우스 황제를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뭉쳐있다. 이에 반해 서로마는 발렌티니아누스 황제, 플라키디아 황후, 아에테우스, 호노리아가 서로 내분과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그럼? 가시겠습니까?”

에데코는 기필코 충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서로마로 가겠다.”

아틸라는 단단한 바위 틈새를 파고드는 뜨거운 불꽃의 열기로 외쳤다.

호노리아 공주의 뜨거운 욕망의 불꽃은 사그라들었다. 이제 열망의 알맹이만 까버리면 그만이었다. 아에테우스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시시각각 자신을 처치하려는 플라키디아 황후와 발렌티니아누스 황제 때문에 호노리아공주를 이용해 아틸라와 전략적으로 수축, 이완이 가능한 관계를 만들면 그만이었다. 호노리아 공주는 옷을 입었다. 아에테우스도 옷을 입었다.

“지금 데려다주세요.”

호노리아 공주의 계통 없는 열망은 스스로 충동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당장 가겠어요.”

호노리아 공주는 완강했다. 아에테우스는 그녀의 실용성 밖에 없는 열망을 도저히 제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저와의 약속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공주님.”

“걱정마세요. 로마는 멸망하고 말테니까.”

“로마의 어떤 황제가 멸망하는 것이겠죠.”

아에테우스는 앞장 섰다. 그는 로마의 황제를 열망하고 있었다. 호노리아 공주만큼 계통 없고 실용성만 있는 열망이었다.

둥둥 둥둥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