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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틸라를 흔든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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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다른 욕망으로 쳐다보고 있는 두 사람의 밋밋하고 지루한 공간에 플라키디아 황후와 발렌티니아누스 황제가 파고들었다.
“의원님과 결혼하면 네가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해줄거야. 성을 하사할 것이고 황금과 하인들과...”
“어머니는 저 늙은이와 결혼할 의사는 없으세요? 잘 어울리시는데?”
호노리아 공주의 물불안가리는 막말에 플라키디아 황후는 말문이 막혔다.
“어머니 애인은 저보다 어리잖아요? 쪼물닥쪼물딱 터트려 먹고싶던데? 하하. 그런데 왜 저는 이 냄새나는 늙은이와 결혼하라는 거예요? 왜 그런지 알기는 하지만.”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숨을 꼴깍거리며 말했다. 성격이 급한 나머지 숨조차 앞지르고 있었다.
“서로마제국에서 누나와 결혼할만 상대는 이 사람 밖에 없어. 아무도 누나와 결혼하려 하지 않으니까. 빨리 결혼해. 오늘 당장이라도.”
호노리아 공주는 파르르 발끈했다.
“네 뜻대로 되지 않을거야.”
“누나는 이미 서로마제국 황제인 나를 황제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했었지. 매우 쌍스럽고 위험한 여자야. 빨리 결혼해서 되도록 멀리 가서 조용히 사는게 좋을거야. 지금 당장 결혼해. 바로 이 자리에서.”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호노리아 공주를 보며 낄낄 웃었다. 과도한 자신감과 허영심이었다. 발렌티니아누스 황제와 같은 혈통의 과도한 자신감과 허영심을 가진 호노리아 공주도 절대 지지 않았다.
“내가 이 늙은이와 결혼해 주기를 바란다면 진심으로 애원해야지? 안그래?”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어머니 플라키디아를 쳐다보았다. 호노리아는 자신을 사지(死地)로 몰고갈 공격을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대(大) 로마제국의 황제께서는 노여움을 내실 때도 어머니께 허락을 받으시나보죠? 하하.”
호노리아는 끈질기게 미친여자 같았다.
“저런 물방개처럼 생긴 늙은이와 결혼을? 서로마제국의 공주인 나를 이런 취급하다니.”
호노리아는 천박한 분을 삭이지 못했다.
“서로마제국의 귀족들이 나와 결혼을 꺼린다고? 오, 그래. 그래서 나는 아틸라와 결혼할거야. 나를 데리러 올테니 기다려.”
플라키디아 황후는 호노리아 공주의 얼굴을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때렸다. 호노리아 공주는 엎어졌다. 플라키디아는 황후는 서슬이 야만인보다 더 야만이다웠다.
“감히 대(大) 로마제국의 황제를 협박해? 감히 야만인을 대(大) 로마제국 영토에 끌어들여?”
호노리아 공주는 버쩍 마른눈으로 대꾸했다.
“나를 이렇게 야만인처럼 취급하니까 야만인과 결혼하려는 거예요. 나는 아틸라와 결혼할거예요. 그러니 그에게 서로마제국의 절반을 주세요.”
“야만인 아틸라는 서로마제국에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할거다.”
플라키디아 황후는 쩌렁쩡렁했다.
“플라키디아 황후님 또한 야만인 고트족의 황후 아니었나요? 혹시 잊으신건 아니겠죠?”
“당장 결혼하지 않으면 내가 널 죽여버리겠다.”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칼을 빼어들었다.
“아틸라가 가만 있지 않을텐데?”
정작 늙은 원로원 의원은 쳐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플라키디아 황후와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는 이 순간, 이미 내리막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제 아틸라의 폭풍이 바로 앞에 도착해 있었다.
사막의 폭풍은 사실 그 정체를 볼 수 없었다. 그저 몸을 맡기고 죽는 수 밖에 없었다. 하늘도 땅도 없었다. 밤도 낮도 없었다. 그저 잿빛 폭풍은 거대했다. 포기하지 않는 추적자였다.
“사막 폭풍 때문에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오형제는 속이 타들어갔다. 사막 폭풍에서 어떤 생명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어떤 죽음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제 궤멸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
에첼이 쉰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들이 그림을 그렸다면 반드시 물감이 필요했을거예요. 밖에서 보기에 찾기 쉽게 표식을 해두었을거예요.”
“그렇다. 그들은 말의 부족이고 활의 부족이다.”
미사흔도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아, 화살에 물감을 발라 특정한 동굴 벽에 쏘면 됩니다.”
아, 오형제여. 오형제는 황금검의 전등을 켜고 있었다.
“그들은 밤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 분명히 밤이면 그 물감은 은밀히 빛을 낼 것이다.”
미사흔 때문에 모두들 안색이 밝아졌지만 곧 도착할 잿빛 사막폭풍은 밤보다 먼저 도착해서 밤을 기다릴 것이 분명했다. 밤은 감추어지고 하찮은 생명도 고귀한 생명도 영원히 감추어질 것이다. 역사의 평등이었다.
“제발.”
에첼은 절박하게 미사흔의 팔짱을 끼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