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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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로마의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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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흔의 한 마디에 에첼이 피곤은 커녕 고양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에첼의 볼에는 어느새 연지가 붉었다. 붉은 월경이 하마 지났는가? 에첼에게 월경의 비릿내는 나지 않았다.

“왕자님.”

에첼은 콧소리가 섞인 음성이 비파소리 같기도 했다.

“훈의 여인들은 남자를 맞을 때 볼에 연지를 발랐습니다. 연지산(燕支山)의 홍화로 쪼물쪼물 만들었...”

미사흔이 에첼의 입을 막았다. 모래가 꺼끌거리는 손으로 막았다. 에첼의 눈빛은 이미 아이를 잉태한, 남자를 아는 여자의 요염한 눈빛이었다.

“오늘입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에첼은 스스로 옷을 벗었다. 매우 서둘렀다. 사막의 끝자락의 밤, 빛과 어둠이 서로 배척하지 않고 서로를 온전히 내주었을 때, 미사흔은 에첼의 홀딱 벗은 몸을 자신의 몸땡이로 얼른 감추고 싶었다. 에첼을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은 그대로 쓰러졌다. 모래가 살을 뚫고 할퀴었다. 모래가 등짝을 파고들었고 무릎을 파고들었고 젖가슴을 파고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두 사람은 신라에서부터 품어온 온갖 종류의 잡다한 정념을 한꺼번에 쏟았다. 새벽이 되도록 멈추지 않았다. 얼핏 잠이 들었나? 순간 찬바람이 귓등을 스치며 살이 떨렸다. 갑자기 말울음소리가 귀를 찢었다. 미사흔은 벌떡 일어났다. 벌거벗은 몸을 가리지도 못했다.

“하하하.”

역시 복호였다. 미사흔은 기겁했다.

“황금검을 품으신 분이 이 꼴이 뭐랍니까? 서역의 계집이랑 분탕질이라뇨? 하하하.”

복호와 복호를 따르는 자들은 실컷 비웃는가 싶더니 어느새 음탕한 웃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들은 에첼을 맛난 음식보듯 하고 있었다. 이미 알몸으로 서있는 에첼은 당당함을 넘어서 거룩해 보이기까지 했다.

“너는 신라에서도 나를 죽이려했다. 나는 너를 헤아려 한 적이 없는데 어찌 이러는지 말하라.”

복호가 말에서 어기적어기적 내렸다.

“난, 눌지 형님의 분부를 받았을 뿐이오. 눌지 형님은 그 황금검이 본래 신라의 것이라고 합니다. 아니 눌지 형님의 것이라고 합니다.”

“속일 생각마라. 나를 헤하려던 그 암기는 고구려 것이었다.”

복호가 미사흔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내가 고구려를 탈출할 때 나를 잡으러 쫒아온 고구려 군사들이 화살촉을 빼고 나를 거짓 쏘았소. 왜 그랬겠소?.”

미사흔은 앞으로 벌어질 참극을 예견하고도 말을 그만둘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왕 실성도 고구려의 힘으로 형님 눌지를 살해하려고 한 적이 있다. 너 복호 또한 고구려의 힘으로 이 황금검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너는 고구려인이냐?”

복호는 미사흔의 무자비한 종말을 결코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기록이라도 해두려는 듯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았다.

“난 당신과 다르오. 내 어미는 박씨요. 그리고 그 이유만으로 충분히 괄세받았소. 당신이 김일제를 추모하는 동안, 나는 내 어머니를 추모했단 말이요.”

미사흔은 어떤 종말을 앞두었지만 바보처럼 완강했다.

“그렇다. 어쩌면 난 느닷없는 자손이다. 하지만 내가, 내 자손이 위대한 제국을 만들것이다. 신라 땅만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땅이 느닷없는 자손에 의해 정복되리라.”

“하하하.”

복호는 미친개처럼 발버둥이었다.

“아직도 모르시오? 고구려에 내 가족이 있소. 나는 김일제도 관심없소. 오로지 이 황금검을 갖고 가야겠소. 이 황금검이 나를 왕으로 만들어 줄 것이오. 내가 대 중원을 정복할 왕이기 때문이오. 나는 다른 세상은 본 적이 없으니 당신이 말하는 그 세상은 알바 아니오.”

복호의 부하들이 미사흔을 두터운 끈으로 결박했다. 미사흔은 무릎을 꿇렸다. 그리고 그의 부하들이 에첼을 끌고와 미사흔 앞에 던지다시피 했다. 천하의 불한당 앞에 벌거벗은 에첼의 몸은 그토록 아름답고 고귀했다.

둥둥 로마의 군대였다. 그들은 북을 치면서 들어왔다. 에르낙, 콘스탄티우스, 오에스테스, 에데코 등이 먼저 그들을 맞았다. 훈의 부대에는 이미 때 이른 승리의 질풍이 휩쓸고 있었다.

“아틸라 제왕님의 소문을 듣고 로마가 벌써 항복하러왔다.”

모두 뒤엉켜서 웅성거렸다. 승리자들의 신명이었다.

서로마 제국의 사신이 말에서 내렸다. 그에게 콘스탄티우스가 다가갔다.

“자네가 올 줄 을 몰랐군. 반갑네.”

그러나 로마 사신은 그의 얼굴에 침을 퉤 뱉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