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로마의 꿈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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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의 전사들이 로마를 부르짖는 아우성은 당장이라도 전쟁터에 나갈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전쟁의 슬픔보다는 전쟁의 기쁨을 더 즐기는 자들이었다. 이들의 유례없는 패기는 앞으로 만나는 모든 문명을 닥치는대로 파괴해버리고 말 것이다.
아틸라가 훈족의 단일 지배가가 된 후, 블레다의 잔 무리들과 그동안 아틸라가 정복해온 부족들 사이에서 괴이한 소문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바로, 신성한 검에 관한 노래였다. 군신 마르스(Mars)의 신성한 검이라고 알려진 이 검은, 온 세상을 정복하는 진정한 패왕에게만 ‘검이 온다’는 전설의 노래였다. 아틸라에게 아직 그 검이 오지 않았으니, 아틸라가 온 세상의 제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었다.
이미 아틸라의 제왕적 통찰은 에첼을 시켜 멀리 실라의 왕자 미사흔에 황금검을 보냈고, 그는 ‘신성한 검이 온다’는 뻘 속에 묻힌 흉흉한 유령같은 소문을 끄집어내어 자신만의 전설을 창조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틸라는 로마의 문(門) 앞에서 훈(Huns)의 대단결을 이끌어야 했다. 에르낙이 아틸라의 듬성듬성한 심기를 알아챘다. 큼큼 절뚝발이 기침을 했다.
“미사흔은 아직인가?”
“네, 제 예상으로는 아직 십 수개월의 세월이 남았습니다. 에첼도 그렇게 약속하고 갔습니다.”
아틸라는 눈만 꿈뻑거렸다. 처절하게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아틸라의 속내를 알아내는 것은 그 누구도 불가능했다.
“우리는 그동안 살육의 광야에서 우리의 살과 뼈를 갈아왔다. 우리는 적을 이기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결국 우리 자신을 이기려고 싸우는 것이다. 우리 훈의 전사들은 나에 대한 믿음이 조금도 흔들려서는 안된다.”
아틸라는 성긴 숲의 드믄드문 무덤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창자까지 도려내는 아픈 상처였다.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그가 더 일찍 올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순간 에르낙의 눈빛은 단단한 바위틈새를 뚫는 뜨거운 용암으로 튀어올랐다.
“미사흔에게도 복호라는 이복형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마치 아틸라 왕자님과 블레다 왕자님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미사흔과 복호는 각각, 왜와 고구려에서 볼모생활을 했습니다. 이것 또한 아틸라 왕자님이 로마 궁정에서 볼모생활을 한 것과 같습니다. 모두 정치적 희생양들이죠. 미사흔과 복호는 그의 형인 왕 눌지가 볼모지에서 그들을 구했습니다.”
아틸라는 고개를 획 돌렸다.
“그들을 구한 정치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미사흔과 복호, 모두 타국에서의 볼모생활이 길어지다보니, 그 지역에서 세(勢)를 형성하게 되었고, 두 사람 모두, 다음 신라 왕권을 노린다는 소문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실라는 그동안 평탄하게 부자세습(父子世襲)이 이루어지 않았습니다.”
콘스탄티우스, 오에스테스, 에데코가 조용히 들어왔다. 아틸라는 더 조용히 물었다.
“볼모지에서 암살자를 보내 죽여도 되었을텐데, 굳이 탈출시킨 이유는?”
“아직도 김일제의 후손을 거부하는 박시와 석씨의 세력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 세력들이 현재 신라 왕권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미사흔과 복호마저 죽였다면 눌지는 혼자 남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그가 왕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전이라, 살려두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에르낙은 콘스탄티우스, 오에스테스, 에데코를 보며 눈빛을 깜빡깜빡 움직였다. 무슨 일인지 묻고 있는 것이었다.
“미사흔과 눌지, 복호와 눌지, 이렇게 각각 비밀조약이 있을거다. 부자세습이 아직 유동적이라면 미사흔과 복호, 두 사람 모두, 차기 왕권을 약속받았는지 모른다.”
아틸라는 그저 서있을 뿐이었다. 그는 아직도 콘스탄티우스, 오에스테스, 에데코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처음에 오가는 길을 정했지만 그것은 발생할 어떤 변수도 제외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에첼의 계획대로라면 어디쯤 있을지 알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추측일 뿐입니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라. 아마 복호가 미사흔을 쫒을 것이 분명하다. 그 벅찬 검은 나에게 와야 한다.”
에르낙은 한 걸음 물러났다. 밖에서는 아직도 훈의 전사들이 로마를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운명의 찬란한 빛이 이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다. 로마가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로마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콘스탄티우스가 웃었다.
미사흔과 에첼은 사막의 끝자락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멈추었다. 두 사람이 횡단해 온 곳은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는 타클라마칸 사막이었다. 죽음의 길을 건너 돈황(敦惶), 명사산을 지나 쉬지 않고 왔으니, 거의 끝에 도달한 셈이었다. 이제 서역으로 가는 문(門)을 열게 될 것이다. 미사흔과 에첼도 피로했지만 말도 더 이상 달릴 수 없었다.
“서역으로 가는 문(門)이 열렸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