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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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무 오래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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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 휩쓸고 간 자리는 단순한 비극만이 남아있었다. 그때 일제가 나섰다.

일제는 여인들을 절대 쳐다보지 않았다.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일제는 앞만 보고 걸었고 한혈마와 암 수 한 몸처럼 움직였다. 한혈마가 무제 앞에 섰다.불현듯 앞발질을 하며 뛰어올랐다. 그 어느때 보다 길게 높게 앞발질로 뛰어올랐다. 아, 한혈마는 날고 있었다. 모두 감탄을 하며 그제서야 방금의 비극을 딛고 일어났다.

“마답비연(馬踏飛燕),이로구나.”

무제는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무제는 음성은 어쩌면 호들갑스러웠다.

“넌 누구냐?”

일제는 당장 무릎을 꿇었다. 얼굴을 숙였다.

“전, 흉노 휴도왕의 태자였으나 지금은 마장의 노예로 있는 일제입니다.”

무제는 친히 일제를 일으켰다.

“이 한혈마는 내가 가장 아끼는 말이다. 내가 이 말을 얻기 위해 이광리를 서역까지 보내었고 두 번의 전쟁까지 했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토록 훌륭하게 키워놓았으니, 이 한혈마는 이제 영원한 전설이 될 것이 분명하다.”

무제는 좌중을 향해 전쟁에서 승리한 무장(武將)처럼 선언했다.

“너는 지금 이 순간부터 노예가 아니다. 너를 마장의 총책임자인 마감(馬監)으로 임명하노라.”

그러자 연회에 참석했던 모두가 무제의 덕을 칭송했다. 일제는 다시 엎드려 무제에게 절을 했다.

“저는 영원히 황제만을 위하여 목숨을 살겠나이다.”

무제는 그에게 선물을 하사했다.

“서역에서 가져온 황금검이다. 영원히 간직하라.”

일제는 그 황금검을 보자 눈에서 불길이 솟았다. 눈알이 타들어가는 듯 했다.

‘이 황금검은 우리 가문의 것이다.’

운명의 검은 그렇게 긴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