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너무 오래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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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이 모래에 폭폭 빠지는 걸음으로 꽤 급히 달려간 곳은 바로 월야천(月夜川)이었다. 초승달 모양의 작은 호수였다. 이 호수의 경건한 처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사람이 생긴 이래로 단 한 번도 마르지 않은 샘이었다. 무인지경의 사막 가운데 남루하게 살아있는 월야천을 만나니 가슴이 깊숙이 찌르르했다.
“다시 맛을 보니 곧 나의 눈물이로다. 내 꼭 다시 오고싶었다. 꼭 오고싶었다.”
장건은 눈물을 마시고 눈물을 흘렸다.
“오늘은 이곳에서 짐을 풀자.”
그는 감부(甘父)에게 말했다. 그는 흉노인으로 길잡이였다. 그러나 짐을 풀기도 전에 그들은 사소한 무용담처럼 익숙하게 포위당했다.
“너희들이냐?”
장건의 목소리는 늙어버린 숲의 팍팍함이 묻어났다. 그러나 스스로 길을 만들며 낯선 시간들을 헤쳐온 사나이로서 전혀 겁이 없었다.
“너희들은 흉노의 땅에 또다시 당연하게 들어섰다.”
그 음성은 절대 용서가 없는 오히려 그 용서를 부둥켜안고 죽어야 할 것 같은 매우 위험한 족속의 새로운 현현(顯現)이었다.
그는 흉노의 왕, 군신 선우였다. 그동안 꽤 늙어버렸다. 군신 선우는 장건 일행을 쉽게 억류했다. 장건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감옥에 쳐넣었다. 장건의 어린 아들은 나무형틀에 사지를 벌린 채 묶어놓았다. 허튼 행동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무장집단의 강한 경고였다.
“당신의 아들 또한 흉노여인에게서 얻은 자식이라 하던데, 당신은 과연 어느 족속인가?”
장건의 심신은 오래부터 울창했다. 군신 선우의 눈동자에 작은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생애 대부분을 사막을 오가며 우리 흉노와 살을 부비고 살았건만 당신은 과연 누구의 신하인가?”
장건의 울창한 심신은 바람이 불어도 끄덕하지 않았다.
장건은 무제의 명령에 따라 길도 없는 끝도 없는 적의만 가득한 사막을 오고간 영리하고 영악한 협상자였다. 그는 말을 아꼈다. 군신 선우가 포도를 입에 물었다.
“본래 당신이 다니는 길은 우리 흉노가 대대로 만든 길이오. 이 길을 통해서 만 한혈마와 포도와 석류석과 황금을 얻을 수 있소. 그런데 당신이 길 곳곳마다 한나라의 용변을 뿌리고 다니며 영역을 표시하고 있으니, 이것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사나운 도발 아니겠소?”
군신 선우는 자신의 병들지 않은 힘을 알고 있었다. 베일 듯 날카로웠다. 장건은 무제의 명령도 잠시 잊을 뻔 했다.
“황금이라면? 황금의 땅이 실제 존재한다는 것입니까?”
“하하. 그렇소. 오직 흉노만이 알고 있는 땅이오.”
군신 선우는 모처럼 형식을 벗어던졌다.
“그곳의 황금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장건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곳은 용연향(龍涎鄕)이라고 불리웠다. 그곳 사람에게 향이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설의 땅이었고 아직은 주인이 없는 땅이었다.
“곧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이오. 대신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주겠소?”
장건은 잘생긴 대답을 항상 준비하고 있는 자였다.
“저는 먼 길을 오가며 많은 길을 만들었고 많은 족속을 만났고 많은 물건을 보았습니다.”
군신 선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의 표정은 금새 어둑신하고 서늘했다. 곧바로 군신 선우의 전사들이 장건 아들의 목에 칼을 바짝 들이밀어 피를 쥐어짰다. 아직 어린 아들은 오줌을 지렸다.
“아직도 그대들은 우리 흉노를 변방의 무식한 오랑캐로 여기는가? 그러고도 그대들이 대(大) 중원을 다스리는 천하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군신 선우의 얼굴의 밝음과 어둠은 일시에 일그러졌다. 수 십 전사들의 수 십의 칼이, 칼도 없는 장건의 얼굴을 에워쌌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