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샘물’ 공장에서는 맹물만 생산할 수 있고 탄산수는 만들 수 없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건물을 새로 지었더니 겨울철 난방온도 기준을 웃돌아 에어컨을 가동해야 한다. 공장이 도서관에서 책장 넘기는 것보다 큰 소리를 내면 가동을 멈춰야 할 처지다.
이는 3월 대통령 주제 규제개혁장관회의 이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회원사를 대상으로 수집한 규제개혁 과제들이다.
전경련은 1300여건의 규제개혁 과제를 발굴, 한국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규제개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이를 검토한 뒤 총 628건을 추려 4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관련 부처에 전달했다고 10일 밝혔다.
전경련은 문제가 된 규제는 기술·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제 기준보다 훨씬 엄격해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것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밖에 신사업 진출을 가로막고, 민관을 차별하거나 공무원이 재량권을 남용하는 규제 등도 있다.
가령 탄산수가 건강과 미용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자 2010년 75억원에 불과하던 국내 탄산수 시장 규모가 2013년 195억원으로 훌쩍 커졌다. 하지만, 기존 먹는 샘물 공장에서는 탄산수를 생산할 수 없고 외부에 따로 음료 제조 공장을 세워야 한다. 탄산수는 미국·중국·일본·호주·동남아시아 등지에서 혼합생산을 하지만, 국내에서는 원 목적 이외의 제조 시설 설치를 금지하는 규제 때문에 신사업 기회가 막힌 것이다.
냉·난방온도 제한 규제도 시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례다. 겨울철에 난방기로만 온도를 조절하는 소형 건물은 전력 사용량을 줄일 수 있지만, 단열 효과가 뛰어난 신축 대형 건물은 복사열과 자체 발열로 제한 온도를 초과하기 때문에 한겨울에 에어컨을 돌리는 웃지못할 일을 벌여야한다.
경기도의 한 업체는 공장을 준공한 이후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자 공장 소음을 40데시벨(도서관에서 책장 넘기는 정도의 소리)로 유지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고용이 전경련 규제개혁팀장은 “규제개선에 대한 좋은 분위기가 형성된 만큼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불합리한 규제들이 조속히 개선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