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자율주행차, 늦기전에 시동 걸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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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을 전후해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디지털화` 바람은 우리나라 전자산업에는 순풍으로 작용했다. 아날로그 전자 기술의 역사가 일천한 한국 산업계는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아날로그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선진국 전통적 강호들과 거의 동일한 기술적 출발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국 TV산업은 과거 아날로그 자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일본과 미국·유럽 등의 선진기업들을 차례로 제치고 글로벌 시장을 접수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 `들고 다니는 전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며 산업군을 형성한 휴대폰 시장에서도 디지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을 기반으로 자리를 잡은 우리 산업계는 세계 시장에서 최고 지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당시 전 세계에 불었던 디지털화 추세가 우리 전자산업계에도 `기회`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기회와 위기는 공존하기 때문이다. 비록 선진 기업의 뒤를 ?는 신세였지만, 아날로그 시대에도 우리 전자산업은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했다. 때문에 당시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막대한 투자를 동반해야 하는 디지털 기술 개발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지금 자동차업계에는 2000년대 전자업계의 디지털 추세를 뛰어 넘는 메가톤급 패러다임 전환이 움트고 있다. 바로 자율주행차다. 자율주행차는 자동차 산업으로만 한정하기에는 그 규모나 파장이 방대하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 익숙한 지금까지의 한국 첨단산업이 사상 처음으로 선도자(First Mover)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의 시장이기도 하다.

세계가 자율주행차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도 지금 바로 준비에 들어간다면 기회의 시장이 열릴 것이고, 망설인다면 위기를 자초하게 된다. 자율주행차가 먼 미래 이야기 같지만 사실 기술적 측면에서는 이미 초보적 구현이 가능한 상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선진 각국이 자율주행을 위한 요소 기술의 고도화 및 안전성 검증에 들어간 단계로, 인프라의 중량감은 다르지만 스마트폰이 그랬듯이 누가 먼저 기술과 서비스를 잘 조합해 상용화 모델을 내 놓느냐가 시장 선점의 키를 쥐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자율주행차 산업 육성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건물을 짓는 것은 개인이 할 일이지만 도시를 조성하는 것은 정부 역할이다. 또 제품(서비스) 개발은 기업의 몫이지만, 산업 육성은 정부의 고유 역할이다. 자율주행차는 아직 시장이 열리지 않은 미래 산업이다. 우리가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한다면 그 규모를 가늠하기 조차 어려운 블루오션이다. 따라서 개별 기업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산업적 측면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자율주행차 시장은 이제 태동기를 맞고 있다. 지금 실기하면 영원히 따라잡기 힘든 최첨단 산업인 만큼, G7 프로젝트, 차세대 성장동력 프로젝트 등과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을 산학연관이 함께 할 때다. 자율주행차는 생태계 전반을 고루 육성하는 국책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국내 완성차 5개사는 물론이고 정보기술(IT)·부품·소재·통신 등 모든 분야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열어 놓아야 한다. 자율주행차 산업은 범정부 차원에서 시동을 걸가치가 충분한, 범정부 차원에서만 시동을 걸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