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위기를 이기는 새 가치(new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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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금융위기 이후부터인 것 같다. 재계의 신년사는 좀 각박해졌다. `위기`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해법도 `변화`와 `혁신`이다. 올해도 그룹 총수들이 지난해와 판박이 같은 화두를 던졌다. 사전에 신년사를 돌려보고 입을 맞추지 않았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새해 아침부터 희망보다 위기론부터 접하는 국민의 마음은 무겁다. 벽두부터 쓴 소리를 해야 하는 총수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만큼 한국경제가 녹록치 않다는 방증이다.

객관적인 지표는 이미 심각하다. 일본 증시가 51년만에 최대치인 57% 상승하는 동안 한국 증시는 거의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미국, 영국에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고 개인 부채가 줄어들었지만 한국에서는 청년고용률이 처음으로 30%대까지 곤두박질쳤다. 새해를 맞아 다시 긴장하고 신발 끈을 조여 매야 하는 까닭이 자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변하지 않는 방법론이다. 변화와 혁신은 여전히 `경제적 가치`에만 매몰돼 있다. 경쟁사보다 새 시장을 먼저 개척하고, 신기술을 한발 앞서 개발하자는 식이다. 또 수익극대화를 위해 `마른 수건 짜기식` 비용절감과 조직 효율화가 강조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오죽했으면 이번 신년사에서 “5년 전, 10년 전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인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히 버리자”고 강조했을까.

지난해를 반추해보자. 소비자가 바뀌고, 시장경쟁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한국에서는 왜곡된 갑을문화와 슈퍼 갑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세계 시장에선 협력사와 건전한 생태계를 이룬 기업들이 승승장구했다.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기업의 공적 책무와 같은 `이상적 가치`가 부각됐다.

바뀐 경쟁 패러다임에서 승승장구한 대표 기업이 구글이다. 구글은 개인정보 수집 의혹 등으로 지탄을 받으면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다. 경제적 가치만 쫓지 않기 때문이다. 구글은 막대한 돈을 투자해 아프리카 오지에 무료 인터넷망 지원 사업을 펼친다. 인터넷 혜택으로 아프리카인이 보다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공적 가치`에 기꺼이 투자한다. 그런데 이런 투자가 궁극적으로 구글 사용자를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구글의 인터넷 광고 매출을 늘려준다. 인간을 자유롭게 할 무인자동차 프로젝트도 비슷한 맥락에서 추진된다. 운전대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차안에서 결국 구글 사이트에 접속할 것이다. 공적 가치가 경제 가치와 연결되는 선순환의 고리를 구글은 찾아냈다.

올해 SK텔레콤의 신년사는 그런 의미에서 군계일학이었다. 하성민 사장은 신년사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행복동행` 프로젝트를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주 베이비붐 세대 창업 지원 사업이 처음으로 성과를 내기도 했다. 기술 혁신이나 시장 개척이 지상과제인 우리 재계에서는 `행복동행`이라는 개념이 다소 생뚱맞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ICT로 소외받은 사람을 돕은 이 프로젝트가 뿌리를 내리면 SK텔레콤은 궁극적으로 충성 고객과 협력사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물론 프로젝트가 기업 홍보용으로 전락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다.

지난해 `온라인 포식자`로 지탄받은 포털사업자나 슈퍼 갑으로 국민의 공분을 산 대기업들은 올해부터는 심기일전해야 한다.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제적 가치`만 쫓아서는 미래가 없다.


장지영 ICT방송산업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