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독일 배우기 열풍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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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참고할 부분이 많다. 통일에 이르는 과정, 정치권의 사회통합 능력, 노사 간 타협 관행, 개방과 경쟁의 경제기조, 강소기업(미텔슈탄트)으로 대표되는 튼튼한 산업조직, 준법 윤리경영 등 모범사례가 많다. 선진국도 독일 배우기에 나서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분단의 역사,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 등 유사한 환경 탓에 특히 참고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국회, 행정부, 단체, 기업, 대학 할 것 없이 다퉈 독일 벤치마킹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독일을 따라가는 방식이 우리 방식이라는 데 있다. 독일을 성공으로 이끈 정부 정책과 기업의 경영 노하우를 원용하기보다 임시방편으로 증상을 치료하려고 한다. 효과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키우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잘못 가고 있는 사례를 보자. 독일 제조업과 강소기업이 벤치마킹의 대상이라면서 우리는 중소·중견 벤처기업에 온갖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한다. 독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업 성과가 좋고 하도급 관련 불법사례가 적은 점에 주목하면서 우리는 대기업 규제를 강화하고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늘리는 방향으로 대처하고 있다. 독일이 산업 지원이나 대기업 규제로 오늘날의 경제 강국이 된 것이 아님은 다 아는 사실이다.

어떤 점을 참고해야 할 것인가. 첫째, 독일 성공의 핵심요인은 개방과 시장경제임을 정확히 알아야겠다. 우리도 규제 혁파와 민영화로 정부 영역의 상당 부분을 시장에 돌려 줘야 한다. 각 부처가 각종 예산사업 항목을 창조경제로 이름을 바꿔 달고 지원과 개입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 성공한 부문에서 세금을 거둬 부실한 부문을 지원하는 식의 악순환을 차단해야 할 것이다.

둘째, 독일은 유럽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표방하면서 주주뿐 아니라 종업원, 고객, 협력업체, 지역사회의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지속 가능 성장`이 된다고 믿는다. 사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는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중소기업이나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자본주의`의 요소들이 이미 많이 반영돼 있다. 정부 정책도 기업 경영방침도 `지속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모델인가`의 관점에서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셋째, 독일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잘할 수 있는 부문을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지멘스의 발전기 역시 168년 동안 쉬지 않고 조금씩 개선해 온 결과다. 우리 정부 부처의 정책이나 기업의 사업 목표에는 온갖 좋은 것은 다 들어 있다. 그리고 해마다 새로운 정책, 새로운 기업 목표를 쏟아낸다. 이렇게 자원과 노력을 분산시키면 큰 성공 거두기 어렵게 된다. 핵심 분야에 집중해도 `퍼스트 무버`는 쉽지 않은 꿈이다.

선진 행정, 선진 기업을 참고해야 하겠지만 최우선 과제는 우리의 강점을 발전시켜 나가는 일이다. 우리는 속도전에 강하다. 가끔 과속이 가져오는 폐해가 있지만 어느 나라 어느 기업도 우리의 속도를 흉내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속도에 제동이 걸렸다. 누가 어떻게 발목을 잡고 있는지 국회와 정부 해당 부서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우리는 조직 내 협업에 능하다. 직(職)의 개념에서 업(業)의 개념으로 변화가 오고 있고 이직률도 상승 추세지만 그래도 아직은 조직 충성도가 높고 종신 고용에 가까운 장기근속을 한다. 종업원들은 오랜 기간을 함께해 오면서 깊은 신뢰가 쌓이고 결속은 강해진다. 이런 종업원들이 스크럼을 짜고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경영진의 몫이다. 창의력에 더해 모든 구성원이 최고의 팀워크를 발휘하도록 경영진은 한국적 현실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김종갑 한국지멘스 대표이사 회장 jongkap.kim@sieme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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