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우드맨랩스가 보여준 제조업 벤처의 희망

세계 캠코더 시장 1위는 소니다. 시장점유율이 40%를 웃돈다. 과연 2위는 어느 기업일까. JVC나 파나소닉처럼 일본 업체가 떠오르겠지만 정답은 이름조차 생소한 미국 벤처 `우드맨랩스(Woodman Labs)`다. 이 회사는 2004년 니콜라스 우드맨이 설립한 캠코더 전문 업체다.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벤처가 내로라하는 전자 대기업을 제치고 세계 캠코더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세계 시장점유율은 13.7%, 미국만 보면 26%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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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가치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22억5000만달러(약 2조3800억원)에 이른다. 비상장 기업이지만 당시 설립자 니콜라스 우드맨이 폭스콘에 지분 8.9%를 2억달러에 팔았다는 사실로 유추한 금액이다. 이후에도 계속 성장했으니 지금은 더 비싼 회사임에 틀림없다.

우드맨랩스 제품 브랜드는 `고프로(GoPro)`다. 어지간히 캠코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본 이름이다. 아웃도어 애호가에게도 익숙하다. 고프로가 아웃도어용 캠코더, 이른바 `액션캠`이기 때문이다. 고프로는 보통 캠코더와는 사뭇 다르다. 캠코더의 필수인 LCD 모니터가 없다. 줌이나 손 떨림 방지처럼 흔한 기능도 빠졌다. 대신 배터리를 포함해도 무게는 73g에 불과하다. 방수·방진·충격방지를 다 갖춰 차돌처럼 강하다. 초고선명(UHD) 해상도에 가까운 3840×2160 화소에 170도 광각 렌즈를 써서 어디서든 현장감 넘치는 영상을 찍을 수 있다.

여기서 우드맨랩스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이 나온다. 바로 `고객이 원하는 것에 집중`이다. 사람들은 곱게 물든 설악산 단풍의 아름다움과 지리산 천왕봉 운해의 장엄함처럼 자신이 보고 느낀 감동을 남과 나누려 한다. 가장 좋은 수단은 영상이다. 모바일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서 현장에서 영상 전송이 가능해졌다. 영상을 찍기에는 휴대가 편리하고 튼튼하며 선명한 고프로가 안성맞춤이다.

물론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었다고 모두 잘 팔리지는 않는다. 적당한 가격과 충분한 이익이 보장돼야 한다. 여기에 효과적 마케팅이 더해져야 한다. 수익성 높은 좋은 상품도 알려지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우드맨랩스는 바뀐 세계 제조업 지형과 일취월장한 인터넷 마케팅에서 그 방정식을 풀어냈다. 두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성공 비결이다.

세계 전자 제품 시장은 위탁생산이 대세다. 아이폰을 생산하는 폭스콘이 대표적 사례다. 지금까지 제조업은 대량 생산이 전제조건이었다. 거액을 투자해 공장을 짓고 다수가 만족하는 제품을 많이 만들어서 제조 원가를 낮추는 방식이다. 위탁생산은 그 틀을 깼다.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직접 생산 라인을 깔지 않아도 아이디어에 설계를 더해서 주문하면 뚝딱 만들어준다. 전문가들은 이제 3만~5만대 정도 소량이라도 위탁생산에 맡기면 해외 배송비까지 감안해도 충분히 가격 경쟁력이 있는 제품이 나온다고 평가한다.

마케팅은 SNS와 블로그를 활용했다. 아웃도어 애호가가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도 공략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쇄도했다. 고객은 알아서 리뷰를 써서 홍보를 대신 해줬고 제품 개선의 밑거름이 되는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제조업, 특히 전자제품 분야는 대기업의 전유물이었다. 벤처는 소프트웨어나 인터넷 서비스, 게임에 한정됐다. 우드맨랩스는 벤처도 제조업에서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명제를 증명했다. 고객의 마음을 읽어 아이디어를 내고 시장의 변화를 파악해 상품으로 만든 후 인터넷으로 알린 결과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벤처가 제조업에 도전할 가치가 충분하지 않을까.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