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소형가전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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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중순 `소형가전 경쟁력 지원 정책` 세미나장. 행사를 주관한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원(KEA) 관계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폭우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던 인원의 2배 인파가 몰렸다. 레드오션 산업으로 치부되는 소형가전 세미나여서, 참석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우리나라 중소가전업체 수가 2700여 개 사를 웃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더욱이 사실상 처음으로 정부가 `소형가전`이라는 카테고리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업계 관심이 폭발적인 것은 당연했다. 역대 어느 정부도 소형가전을 정책적 지원 이슈로 꺼내들지 않았다. 이미 우리는 가전강국이라는 분위기에 소형가전도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형가전 산업의 발전사는 순탄치 않다. 국산 소형가전의 출발은 50년대 군수용 제품이 시작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본격적인 태동은 70년대 후반으로 대기업 가전사로부터 중소협력업체가 제조기술을 이전받아 OEM 납품하는 형태로 형성된다. 이후 자체 브랜드로 전환한 중소기업들이 탄생하면서 80년대 소형가전 산업계에는 대·중소기업이 공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90년대 소형가전의 암흑기가 찾아온다. WTO체제 출범으로 유통시장 개방이 시작되면서 외산제품이 밀려왔고, 대기업 가전사들도 일부 품목만 남기고 소형가전에서 발을 빼면서 OEM에 의존했던 중소업체는 물론 브랜드는 있으나 자체 유통조직을 확보하지 못한 업체들도 급속히 쇠락했다. 97년 수입선다변화까지 풀리면서 일본산 소형가전이 본격적으로 밀려왔고, 자본력으로 국내 가전양판점 진열대와 홈쇼핑까지 장악하면서 국내 중소가전업계는 설 땅을 잃게 됐다.

2000년대에도 국산 소형가전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유통시장 개방을 극복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일본과 유럽, 미국을 제치고 승승장구하던 TV, 냉장고 등 첨단 대형가전과는 대조적이다. 중국까지 본격 가세한 소형가전은 대기업이 주력하기에는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3년 현재. 2700여 개 사가 존재하는 중소 가전업계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대기업 가전업체들도 소형가전산업 재조명에 들어갔다. 창조경제를 표방한 정부는 지난 20년간 방치하다시피 한 소형가전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정부와 업계의 소형가전 `다시보기`는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 삶의 질 향상, 세분화한 파생 틈새 상품의 선전 등 그 배경이 복합적이다. 빠르게 제품화할 수 있는 제조기반 인프라, 홈쇼핑 오픈마켓 등 간편한 온라인 판매망 확대 등도 한 몫 한다. 창조적 아이디어와 콘셉트만 분명하면 소자본으로도 소형가전의 기획·제작·유통까지 할 수 있는 생태계가 갖춰져 있는 것이다.

타이밍이 좋다. 산업부와 미래부가 소형가전 살리기에 나섰다. 소형가전 아이디어를 창업까지 이어주는 정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소형가전 시장의 요구를 가장 잘 아는 홈쇼핑업계를 비롯해 판매 및 마케팅 접점인 유통업계 참여도 이끌어 냈다.

`아이디어 발굴 → 맞춤형 컨설팅 →제품개발 및 창업(사업화).` 이미 실행에 들어간 이 프로젝트는 우연히도 박 대통령이 높은 관심을 보이는 `창조경제타운`의 추진 개념과 꼭 닮아 있다. 소형가전산업이 새로운 창조적 가치의 발굴로, 블루오션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