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366>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가 저술한 책 `황제들의 생애(De vita Caesarum)`에 나오는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는 말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한 말이라고 한다.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후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내란을 종식시킨 아우구스투스는 아예 이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는 `서두르다`를 의미하는 `festina`와 `천천히`를 의미하는 `lente`의 합성어다. 서두르다보면 천천히 할 수 없고 천천히 하다보면 서두를 수 없다. 따라서 `천천히 서둘러라`는 말은 논리적 모순이다.

하지만 이 말은 모순을 넘어 역설적 의미를 갖고 있다. 서두르지만 전후좌우를 따져보면서 서두르라는 말이다. 방향과 목적의식을 잃고 자신이 왜 서두르는지를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목적 없는 질주와 탈주는 가만히 앉아 있는 만 못하다. 그래서 멈출 시기를 아는 결단과 천천히 서두르는 여유 속의 긴장감은 질주하는 속도와 서두름의 조급함보다 더 중요하다. `천천히 서둘러라`는 서두르되 내가 무엇을 위해서 서두르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라는 말이다.

`스피링복`이라는 산양은 앞의 양이 뜯어 먹는 풀을 뒤의 양이 못 뜯어 먹도록 밀어붙인다. 그러다보면 앞의 양은 더 빨리 풀을 뜯는다. 또 앞의 양을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뒤의 양도 더 빨리 밀어붙여야 한다. 이러다보니 결국 앞의 양은 풀을 뜯어 먹지도 못한 채 앞으로 내달리게 되고 뒤의 양도 내달리는 앞의 양을 쫓아 더 빨리 내달리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발생한다. 왜 어디로 뛰고 있는지 방향성과 목적의식을 상실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 빨리 서두르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자멸행위 밖에는 되지 못한다.

어슬렁거리면서 여유를 즐기되 다음 할 일을 구상하면서 기회가 다가오면 머뭇거림 없이 앞으로 달려나아가는 한적한 치열함이 엿보이는 말이 바로 `천천히 서둘러라`가 아닐까.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