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1일이 과학의 날이다. 새 정부 출범 이 후 첫 과학 기념일이다. 올해는 더욱 의미가 각별하다. 박근혜 정부가 과학기술을 국정 현안으로 꼽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박 대통령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첫 이공계 출신 국가 원수다. 이래저래 올해 과학의 날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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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정부기관·지방자치단체·연구기관 주최 과학 이벤트가 줄을 잇고 있다. 이달에만 총 700여 건에 달한다. 4월 한 달 동안에는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는 과학 행사가 열린다고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 가볼만한 행사 하나를 추천하라면 과학창의재단 주최로 열리는 `2013 가족과학 축제`를 꼽겠다. 서울 광화문광장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펼치는 행사에는 거의 모든 과학 주제에 관한 체험 마당이 펼쳐진다. 행사 규모도 가장 클 뿐더러 창의재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알찬 프로그램이 풍성하다. 마침 일요일이라 가족과 함께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46회 과학의 날. 벌써 반세기를 맞지만 의외로 역사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과학의 날 유래는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출발은 `과학 데이`였다. 이를 만든 주인공이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신지식인 김용관 선생이다.
조국을 근대화하려면 과학기술이 필요하다고 보고 당시 경성공전 동기와 함께 발명학회를 설립했다. 학계·문인·언론인 등 저명인사를 영입했고 최초 과학 잡지 `과학조선`을 창간했다. 34년 과학 대중화를 위해 4월 19일을 과학 데이로 정했다. 365일 중에 4월 19일을 낙점한 데는 이날이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의 사망일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19일이었는데 21일로 왜 바뀌었을까. 당시 과학대중화는 독립운동 일환이었다.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기르고 독립을 앞당기자는 게 과학 데이 정신이었다. “다같이 손잡고 과학조선을 건설하기 위해 분기하자”와 같은 구호가 일상적이었다. 결국 1938년 김용관 선생을 체포했고 독립운동 일환으로 출발했던 과학 데이는 4년만에 막을 내렸다.
과학의 날이 다시 부활하기까지는 30여년이 걸렸다. 일제 식민지 이후 과학문화 운동은 암흑기였다. 혼란한 사회 정치와 6·25전쟁으로 과학의 중요성은 알지만 대중 운동으로 전개되지 못했다. 과학 데이가 양지로 나온 데는 1967년 과학기술처 설립이 계기했다. 과학기술부 탄생 1주년을 맞는 1968년 4월 21일을 과학의 날로 정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과학 데이 시절부터 우리나리에 `과학`이라는 용어가 익숙해진지 거의 100년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엄청 발전했지만 분위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한 게 없다. 일제 강점기 시절 국민계몽운동으로 시작한 과학 데이 슬로건이 `생활의 과학화! 과학의 생활화!`였다. 지금과 별 다르지 않다. 과학이 일상생활 속에 뿌리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여럿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마니아가 없다는 점이다. 과학은 어렵다는 선입관에서 출발해 쉬게 접근하는 과학, 대중적인 과학이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했다. 그러나 과학은 기초지식이 부족하면 호기심이 생길 수 없다. 기본 과학정보나 지식이 없으면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전문 연구원이나 교수가 아니지만 과학에 미친 사람이 많다.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체험 시설도 풍부하다. 이 때문인지 해외에 나가면 해박한 과학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비즈니스맨을 만나는 경우가 흔하다.
과학 대중화를 확산시키는 방법은 취미로서 과학에 미친 사람을 많이 만드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마치 주변에서 마니아를 중심으로 마라톤 열풍이 불고 인문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학 공부에 미친 `사이언스 오덕후(오타쿠)`가 많아야 과학 수준도 성큼 올라간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