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터넷 거버넌스, 미래를 향한 논의

인류가 창조한 유일한 공간, 온전히 인간의 힘으로만 만들어가는 공간, 신이 창조한 공간에서는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공간, `인터넷`.

국가 간 영토싸움에 수세기 간 전쟁을 펼쳐왔듯 인터넷 탄생 40여년이 된 지금, 이 새로운 영토를 누가,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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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도메인, IP 할당 등 인터넷 주소자원의 분배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던 용어 `인터넷 거버넌스`는 2003년 정보사회정상회의(WSIS)에서 공론화된 이후 인터넷 관련 공공정책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장됐다.

최근에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도 인터넷 거버넌스 문제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초 두바이에서 열린 ITU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에서 세계 각국은 국제전기통신규약(ITR)의 적용 범위를 `인터넷으로 확장할지`를 놓고 논쟁을 펼쳤다. 기존 ITR은 전기통신에 대한 과금 및 요금정산 등 24년 전 제정된 국제조약인 만큼, 현재에 맞게 인터넷 접속비용, 스팸·네트워크 보안, 콘텐츠·전자상거래·과세 등 인터넷 관련 이슈들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된 것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내재되어 있던 국가 간 이해관계의 첨예한 대립관계도 작용했다. 사실상 지금까지 인터넷 주소자원 배분 등 인터넷과 관련한 주요 의사결정을 민간단체인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가 주도하고 있는 것에 대해 러시아, 중국 등의 국가가 강력히 반발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개정된 ITR에는 인터넷과 관련하여 실제 구속력을 갖는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넷 거버넌스와 관련한 결의문을 채택함으로써, 향후 ITU가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으며, 정보보호, 스팸, 인터넷 접근 권한 등에 관한 선언적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미국 등 55개국은 인터넷 관련 논의에 대한 `다자간 협력 모델`의 중요성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서명 거부 또는 유보 의사를 표명하여, 기존 ICANN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거버넌스 관련 결의에 대한 찬성과, 인터넷 접속권 보장에 관한 기권을 선택했다.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외교적 입장을 고려하여 명분과 실리를 취한 결과다.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는 ITU와 ICANN 이외에도 OECD, 사이버스페이스총회 등 여러 국제기구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번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인터넷 관련 이슈가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지속적으로 다루어져야 함을 주장하며, 남겨진 과제들은 `13년 서울 사이버스페이스총회, `14년 부산 ITU 전권회의 등에서 논의해 나갈 것을 제안했다.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우리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더욱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ICT 강국의 위상에 걸맞은 영향력과 입지 확보를 위해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방통위 등 관련 정부부처를 중심으로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직과 체계를 정비하고, 한국인터넷진흥원 등 인터넷 전문기관을 중심으로 관련 포럼 등을 활성화하여 산·학·연은 물론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하겠다.

이기주 한국인터넷진흥원장 kjlee@kis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