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기술로 통신 인프라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정보통신기술(ICT)강국은 허상이다. 우리나라는 여태 ICT 소비 강국에 머물러왔다. 결국 미래인터넷은 기술 중심으로 국가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데 정부가 전담 부처 구성, 연구개발(R&D) 재원 마련 등에 총력을 기울여야 간신히 따라갈 수 있는 위기상황이다.”
지난 7월부터 전자신문이 퓨처면에서 전문가 릴레이 기고 형태로 진행한 `미래 네트워크, 미래 인터넷`이 막을 내렸다. 연재 종료를 즈음해 12월 한국지능통신기업협회(NICA)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가한 필진들은 “전담 부처를 중심으로 R&D에 집중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를 표시했다. 국내 통신장비 산업이 사실상 고사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에도 의견을 같이 했다. 통신사업자가 경쟁적으로 깔아놓은 망도 투자대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 이를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한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투자, 기술개발, 운용, 서비스로 이어지는 ICT 생태계에서 우리나라가 선순환을 이루지 못한다는 `총체적 부실론`을 지적했다. 콘텐츠(C)-플랫폼(P)-네트워크(N)-단말기(D)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할 강력한 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좌담회 내용을 요약·정리했다.
◇참석자(가나다순)
김봉태 ETRI 차세대통신연구부문 소장
김준혁 지능통신기업협회 사무국장
이재일 KISA 인터넷침해대응센터 본부장
최준균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사회=강병준 전자신문 벤처과학부장
◇사회(강병준 전자신문 벤처과학부장)=좌담회 본 주제를 시작하기 전에 네트워크 관련 국내 시장을 살펴보자.
◇김준혁 지능통신기업협회 사무국장=모두가 어렵다. 주요 네트워크 업체 중 다산네트웍스만 유일하게 1000억원 이상 매출을 기록했다. 신규 아이템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내년 사업계획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통신사업자 투자여력도 점점 줄어 구조조정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내수가 안 받쳐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최준균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학계도 황폐화됐다.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교수도 미래인터넷 분야 말고는 없다. 지금 방송하고 통신 네트워크만 이야기하는 데 사실 전국에는 물류·교통·금융·정부·철도·에너지 등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망이 많다. 사실 이렇게 복잡하게 네트워크를 깔 필요가 없다. 방송과 통신망을 조금 확장해 이런 독자망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면 규모의 경제 달성이 가능하다.
◇김봉태 ETRI 차세대통신연구부문 소장=네트워크는 기술 변화가 있을 때 투자가 전폭적으로 이뤄지고 나머지 기간은 유지보수, 운영에서 생산성이 발생한다. 국내 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것은 인터넷프로토콜(IP) 기반으로 장비와 솔루션이 가면서 기술 기반으로 규모의 경제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국내 시장 구조로만 따라가기 벅차다. 트래픽은 느는데 들어가는 장비가 많지 않은 상황이 닥쳤다.
◇최준균=전국에 깔린 개별망의 효율이 굉장히 낮은 데 반해 통신사 망은 효율이 좋기 때문에 합쳐야 한다. 산업 네트워크와 통신망을 통합해 관로를 정리하고 이를 이용해 개별 비즈니스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나 기관이 가진 서비스 망 운용을 전문업체에 맡기면 통신 인프라를 개발하고 이를 유지 보수하는 장비업체가 살아날 수 있다.
◇김봉태=방식은 다르지만 이미 서버 분야는 전국에 통합 전산센터가 세워지며 이 같은 어려움이 다소 해결됐다고 본다. 네트워크도 비슷한 방식으로 비용은 낮추면서 훨씬 많은 네트워크 용량과 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장비도 넣을 수 있고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 질 것이다.
◇이재일 KISA 인터넷침해대응센터 본부장=보안관점에서 보면 사실 네트워크 보안은 굉장히 활성화되는 추세다. 기업마다 성장률이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30%까지 달성했다. 보안 관점에서는 망고도화에 따라 장비를 또 개발해야 하는 것이 숙제다. 다양한 망이 연동된다는 것도 고민거리다. 실례로 롱텀에벌루션(LTE) 보안 솔루션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기존 인터넷 방식으로 스마트그리드 같은 전력망을 쓰기에는 보안에 취약한 부분이 많다.
◇사회=산업이 황폐화돼 규모의 경제를 시급히 달성해야 한다는 점에 다들 공감하고 있다. 우리나라 통신장비업체의 글로벌 경쟁력은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생각하는가.
◇김준혁=글로벌 업체와는 격차가 있다. 적은 돈으로 빨리 개발해 수지를 맞추는 방식으로 사업을 하다보니 코어 장비에 손을 댈 기술과 자본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산장비가 들어가는 곳이 코어망이 아닌 가입자 구간 밖에 없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김봉태=코어망에 도입되는 대용량 라우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장비가 상용 칩을 이용하기 때문에 국내 업체가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전자나 에릭슨-LG를 제외하면 모두 중소업체라 이더넷 스위치, 캠퍼스 LAN 같은 전문 분야를 살려 집중할 수 있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실제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간신히 먹고 살지만 앞으로는 정부 차원에서 따라가는 수준 정도의 비전 제시가 꼭 필요하다.
◇김준혁=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얼마나 국산장비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지 여부가 통신장비 글로벌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김봉태=최근에 미국에서 보안을 이유로 공공부문에 외산장비가 들어오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선진국조차도 `공공부문에서 외산장비를 쓰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 셈이다.
◇사회=네트워크 인프라를 남에게 맡길 때 실제 위협이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
◇이재일=상반기에도 미국에서 네트워크 보안 취약점을 점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모든 해킹이 마찬가지지만 내부구조를 알고 있으면 공격하기가 쉽다. 우리나라는 주요 네트워크 인프라 자체를 미국 혹은 중국 장비에 의존하는 데 국방과 공공 분야 공격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최준균=망을 설계할 때 두 가지로 분리해야 할 필요성도 높다. 네트워크가 장비를 제어하는 용도로 쓰일 때는 보안성이 깨지면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통망과 전력망이 공격받으면 교통 혼란, 전국 단위 정전 같은 재난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정부 제어망 계열에는 일반 수준보다 강화된 보안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이재일=실제로 최근 폐쇄망으로 이뤄진 미국 국가 보안시설이 공격당하는 사례가 있었다. 네트워크란 것이 기본적으로 관리가 잘 돼도 장비와 임베디드 소프트웨어가 근본적으로 취약점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알면 공격이 가능하다. 네트워크 장비를 비롯해 우리나라도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인프라에 대해 소스코드를 보는 검증이 필요하다.
◇사회=미래 네트워크는 어떻게 진화할 것이라 예측하는가. 또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돼야 하나.
◇최준균=네트워크를 창조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선 일단 전폭적인 개방이 필요하다. 차기 정부에서는 `나쁜 짓만 하지 않는다면 다 열어준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보 접근을 자유롭게 한 뒤 여기서 창의적인 비즈니스가 일어난다면 세금으로 도네이션(기부) 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간접 자본, 공공재로서 네트워크에 접근하자는 이야기다. 초기에는 정부가 인프라에 투자하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이용은 자유롭게 하되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서는 일정 비율로 세금을 걷는 구조가 적당하다. 물론 불량 트래픽은 관리해야 한다.
◇김봉태=인프라를 잘 구축해놓으면 그 다음에는 각 지점에서 보유한 콘텐츠를 잘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2단계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네트워크 활용도는 아직 많이 떨어진다. 현재 가진 정보를 체계화할 필요성이 크다. 특히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나가는 데이터가 더 많아졌다. 산업이 치고 나갈 수 있는 기회다.
◇이재일=앞으로 나오는 서비스에서는 프로파일링이 중요해 질 것이다. 개인의 행태가 정보가 되고 이것이 비즈니스 가치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 굉장히 세밀한 개인 맞춤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서비스가 최적화되고 좋아질수록 프라이버시 침해를 고민해야 한다. 산업이 나가면서 규제가 뒤따르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진흥과 규제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앞으로 개인서비스가 고도화·정밀화되는 만큼 관련분야의 입법이나 제도화가 필요하다.
◇김준혁=우리가 과연 건전한 ICT 생태계를 가졌는지 의문이다. 콘텐츠(C)-플랫폼(P)-네트워크(N)-단말기(D)를 총괄할 수 있는 정부부처가 필요하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미래 인터넷이 어떻게 발전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 환경은 ICT 전담부처 부재로 스마트폰 혁명에서도 뒤졌고 초고속 일등국가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기술로 미래를 보장해야 한다. 차기 정부에서는 ICT 전담 부처를 신설해 국가 신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신규 일자리와 먹을거리를 창출해야한다.
정리=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