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국산이지만 원료는 수입입니다.”
길거리 전기 설비에 적혀 있어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다.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항상 잊고 지내는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자원 수입량이 많은 나라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하지만 전기를 포함해 가스, 열 등 에너지를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사용한다. 풍족함이 이미 습관으로 굳어졌다. 원료는 부족할지언정 에너지의 최종 소비품이 풍부하고 값이 싸니 사용하지 않으면 바보다.
최근 정부는 동절기 전력위기를 우려해 강도 높은 절전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싸고 넘치는 에너지를 걱정 없이 사용하던 습관을 한순간에 바꾸라고 하니 당연하다. 민생이라는 이름 아래 제한된 에너지 요금이 만들어낸 습관이 이제 민생을 위협한다.
재정 상태를 실제보다 좋아 보이게 하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는 것을 분식회계라고 한다. 지금의 국가 에너지 정책은 실제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에너지를 사용해도 되는 것처럼 포장됐다. 사실상 국가 분식회계와 다를 바 없다.
분식회계 문제는 언제 어느 때 터질지 모른다. 그리고 분식회계 기간이 길면 길수록 후폭풍은 커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민생 물가안정이라는 대원칙에 거슬러 그 분식회계에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현 정부 역시 정치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우려되는 뜨거운 감자는 못 본 척 지나간다. 이제 대선이 2주일 앞으로 다가왔으니 냄비 속 뜨거운 감자는 뚜껑이 덮인 채 차기 정부에 건네질 것이다. 그리고 그 감자는 냄비 속에서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대선의 승자가 누가 되건 지금의 에너지 분식회계에 마침표를 찍는 용단이 필요하다. 감자가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도록 냄비에서 꺼내야 한다.
언제까지 물가안정을 명분 삼아 재정에 구멍을 내고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과태료 인상과 같은 방법을 동원할 수는 없다. 그 과태료 역시 결국 민생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착시 효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임기응변식 정책을 버리고 욕먹을 각오로 모두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국민을 위해 에너지 업계에 휘둘렀던 가격 제한의 칼이 부메랑이 돼 다시 국민에게 돌아오기 전에 차기 정부가 에너지 분식회계의 악습을 끝내야 한다.
조정형 그린데일리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