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자
(사회자)
-정지연 전자신문 국제부장
(한국측)
-김희수 KT 경영연구소 부소장
-조영삼 한국산업연구원(KIET) 베이징사무소장
-현창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사업화본부장
-황재원 KOTRA 베이징IT지원센터장
(중국측)
-왕시원 중국 공업화신식화부 산하 국제경제기술협력센터(CCPIT) 처장
-천성시 중국정보산업무역협회(CITTA) 부주임
-텐웨이빙 ZTE 부총재
편집자 주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지 만 20년이 되던 지난 8월 24일 양국 정부 관료와 전자·정보통신기술업계 관계자 300여명이 중국 베이징에 모였다. 21세기 동북아시대 중심국으로 떠오른 두 나라가 그간 쌓은 교역 경험과 신뢰를 바탕으로 견고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 세계 시장에 손잡고 나가자며 머리를 맞댔다.
핵심 주제는 `한중 정보기술(IT) 협력.`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새로운 경제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부품소재, 스마트기기, 융합IT 등을 집중 육성하고 `보완적 경쟁-수평적 협력`을 이뤄보자는 데 의견이 집중됐다.
이날 포럼은 대한무역투자공사(KOTRA)와 중국공업화신식화부 산하 국제경제기술협력센터(CCPIT)가 함께 마련했다. 양국 전문가가 참석한 좌담회는 한중수교 20주년, 전자신문 창간 30주년을 기념해 별도로 열렸다.
◇사회=한국과 중국이 IT 분야에서 협력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협력이 기업들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황재원 KOTRA 베이징IT지원센터장=IT산업은 미래가치가 높은 분야다. 한국의 우수한 기술력과 다양한 마케팅 경험, 중국이 글로벌 생산기지로서 쌓아온 강점 등을 결합한다면 여러가지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2005년께 칭다오 무역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중국 기업과 관계를 트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벌이는 과정에 하이얼 경영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우리 측에서 모든 비용을 지불할테니 한국을 한번만 방문해달라고 제안했다. 하이얼 측은 처음에는 의아해 했지만 이후 매년 한국을 오가며 우리 기업들과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기업 역시 중국 시장이 뒷받침된다면 더 공격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IT시장의 흐름을 보면 동북아시아로 무게 중심이 옮겨오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상호 보완할 부분을 찾아 협력한다면 더 큰 결과물을 나눠가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한중 간 IT가치사슬 개념이다.
◇천성시 CITTA 부주임=한중 간 IT협력의 필요성을 자원, 시장, 표준 등 세 가지로 나눠 얘기해보겠다. 자원 협력은 아시다시피 서로 필요성이 있고 우월한 것들을 결합하면 된다. 시장적 측면은 이미 양국 IT시장이 공유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화됐다. 중국 소비자들에게 한국 IT상품이 인기고, 중국 IT기업 역시 한국 수출이 크게 늘었다.
양국 IT협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표준 분야다. IT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전통산업계가 표준을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가 많다.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한다. 국제적인 표준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통일된 표준이 없으면 제2, 제3 국가에서 사용하지 못하고 수출도 어렵다.
1000여개의 회원사가 있다보니 다양한 표준협력 회의를 많이 한다. 전자태그(RFID)가 가장 활발한데 한중일 연석회의를 이미 11차례나 열었다. 최근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는 온라인 게임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표준 제정 움직임이 있다. 온라인, 웹, 모바일 등으로 나눠 지난달부터 협의가 시작됐다.
◇사회=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협력체계를 먼저 갖춰야할까. IT산업에도 제조, 콘텐츠,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성과가 빨리 나거나 반드시 협력이 필요한 분야는 어떤 것일까?
◇현창희 ETRI 사업화본부장=IT가치사슬을 기반으로 협력을 통해 원가를 낮추거나 시장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분야가 우선이다.
양국 정부는 최근 IT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육성 분야도 비슷하다. 크게 나눠보면 △IT와 제조업이 융합하는 유비쿼터스, 헬스케어 △인터넷 발달에 따라 문화를 통합하는 콘텐츠, 소프트웨어(SW) △네트워크 고도화를 이끄는 사물인터넷, 미래인터넷 등이다. 모두 기술과 시장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포럼에 앞서 대련에 위치한 노이소프트를 방문했다. 개발인력만도 7000명에 달했다. 숙련된 SW 인력이 부족한 한국 입장에서는 다양한 협력을 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텐웨이빙 ZTE 부총재=중국 IT업계 경쟁력은 시스템 설계와 집적 기술에 있다고 본다.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우수한 부품 확보는 필수적이다. 한국 부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부품 분야를 협력의 시발점으로 보는 이유다.
삼성의 메모리나 모니터, 배터리 등과 중소기업들의 커넥터는 세계시장에서 아주 경쟁력이 있다. 또 한국기업들은 부품에 대한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축적도 상당하다. 한국과 교류를 확대하면서 상품 경쟁력 높일 수 있다고 본다.
또하나는 관리 경험을 전수받는 것이다. 한국기업은 품질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나름의 노하우를 쌓았고 관리 능력을 축적했다. 이외에도 근면한 국민성 등에서 경영에 필요한 자극을 받는다.
◇사회=필요성은 높지만 좀처럼 성공적인 협력 모델을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다. 한중 간 IT협력체계를 구축할 때 애로점은 무엇이고, 양국 정부와 기업들은 어떻게 역할을 나누는게 효과적일까.
◇왕시원 CCPIT 처장=중국이 첨단기술과 혁신성이 부족하지만 노동력과 시장이 풍부해 한국과 보완점이 많다는 지적은 여러차례 나온 것 같다. 기업이 모든 것을 하는 게 아니라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고 본다. 동종 업계에서 단순한 것을 놓고 경쟁하는 것은 자원 낭비다. 국가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양국 협력의 주인공이자 주체는 기업이 돼야 한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정책적 지원만 하면 된다. CCPIT는 KOTRA와 비슷한 성격이다. 기업이 상대국 기업과 원활히 교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중국은 12차 5개년 계획에서 IT산업의 목표를 구체화했다. 각종 서비스와 결합하고 부가가치를 높인다. 클라우드컴퓨팅 같은 것을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우리는 이런 내용을 업계에 잘 알리고 국제전람회 등 여러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김희수 KT 경영연구소 부소장=정부가 독자 표준이나 단독 기술 개발에 집착하는 부분을 한번 짚고 넘어가보자. 기업들에는 이런 기술 표준이 상당한 장벽으로 작용한다.
한국은 초고속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위해 와이맥스 계열의 와이브로를 자체 개발했다. 그러나 4G로 넘어오면서 세계 시장표준은 WCDMA 계열의 LTE가 대세가 됐다. 중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TDD 방식의 LTE도 또 하나의 글로벌 축이 될 전망이다. 외국의 와이맥스 사업자들은 대부분 와이맥스와 기술이 유사한 TDD 방식의 LTE로 전환하고 있다. 한국이 와이맥스를 고집하지 않고 TDD 방식의 LTE로의 전환을 수용한다면 한국 통신사업자와 이용자도 좋고 중국과의 협력도 증진될 것이다.
IT가 다양한 분야와 융합, 확산되고 있는데 자꾸 진입장벽을 만드는 느낌이다. 피해의식이 있어서 일수도 있지만 관련 법과 제도를 바꿀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장이 열려야 협력할 분야가 생긴다. 기존 기득권자를 의식해 막으면 아무 것도 발전할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보호하는 제도에 보다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불확실성을 제거해주고 안심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보상해주는 체계를 마련해야 협력이 활성화할 것이다.
◇천성시=WTO 가입 후 관세장벽은 낮아졌다. 그러나 더 큰 어려움은 정책이나 기술표준, 소비자가 갖고 있는 문화와 관습이 달라서 장벽이 되는 것들이다.
양국 정부는 정책적 측면에서 지원하고, 기술개발과 표준제정에서도 협력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줬으면 한다. 문화와 관습의 장벽을 낮추기 위해 전시회 참여 등 직접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늘려줬으면 좋겠다.
장벽은 한 쪽만 있어도 모두가 힘들다. 즉, 쌍방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중국 온라인 게임업체들이 기술표준 제정을 시작했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 업체가 옵저버로 참여한다. 이런 작업에서부터 양국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 협회 등이 매개체를 하면서 발벗고 나서야한다.
◇황재원=핵심을 벗어난 것일 수도 있지만 인재 확보 문제도 한번 따져봤으면 좋겠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언어능력을 기반으로 기술과 마케팅을 모두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중국에 온 한국 유학생들은 수요가 어느 분야에 있는 지 고려하지 않고 명문대학만 고집한다. 북경대 영문과를 가거나 칭화대 중국어과를 간다. 중국에서의 수요를 고려한다면 IT분야를 중국어로 공부하는 인력이 있어야 한다. 한중IT협력을 본궤도에 올리기 위해서는 양국 정부 모두 협력을 담당할 인재를 키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사회=한국과 중국은 그동안 일본과 연계성이 높았다. 양국이 협력해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은 어떨까. 최근들어 중국 기업이 일본 기업에 투자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고, 한국도 일본 기업의 틈새를 빠르게 파고 들고 있다. 어떤 협력이 가능할까.
◇왕시원=일본에서 꽤 오래 근무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7월 레노버가 NEC와 일본에 합작법인을 세웠다. 하이얼도 산요의 가전 사업 일부를 인수했다. 일본의 강점은 원자재와 설비가 있고, 그들이 아쉬운 부분은 높은 인건비다. 한국보다 2배, 중국보다 10배나 높은 국내총생산(GDP)은 분명 3국간 분업과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최근들어서는 전력문제와 환율도 아주 불리해졌다. 이외에도 교토의정서에 의한 에너지 생산 감소 등도 일본기업에는 원가상승 부담이 되고 있다.
이는 한국, 중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 레노버와 하이얼이 왜 NEC와 산요를 겨냥했을까? 그들의 브랜드와 사업의 경험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은 중국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투자비와 원가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
현재 중국은 외환보유고가 아주 많다. 위안화도 절상됐다. 해외 투자를 공격적으로 하는 이유다. 일본 기업에 무이자 대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여력이 있다.
한국 기업들이 이 부분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조영삼 KIET 베이징사무소장=부품소재 분야가 한중일 IT협력 관계에서는 가장 핵심 고리일 것이다. 서로 보완적 협력도 가능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무한경쟁으로 치닫을 수 있는 분야다.
부품 쪽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한일 양국 기업이 전쟁을 치른 바 있다. 중국 기업들도 최근 이 분야에 집중해 일본과 한국을 따라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어느 선을 넘으면 치킨게임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조금 더 큰 시야로 보면 3국은 같은 분야를 놓고 경쟁할 게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역할분담을 해야 할 필요성이 더 크다. 특히 소재분야는 한국과 중국이 상대적으로 보완성이 높고 협력에 따른 이익을 상호 향유할 수 있어 관심이 높다. 중국의 기초과학 역량과 한국의 상용화 능력을 합쳐 핵심 소재 개발을 이뤄내고, 양국 내수시장에 이어 제3의 시장으로 함께 진출하는 성공 모델 한 가지만 만들어낸다면 너도나도 따라서 협력에 뛰어들 것이다.
◇사회=바쁘신데 오랜 시간 협조해주셔서 감사하다. 여러분들의 토론이 양국 IT협력에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수고하셨다.
정리=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