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교수들이 한 해를 상징적으로 압축한 사자성어로 `상화하택(上火下澤)`을 선택한 적이 있다. 세종시, 사립학교법, 진보·보수 이념 등 각종 논쟁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였다. 상화하택은 `주역(周易)`의 64괘 중 서른 여덟 번째 괘로 조사 대상 교수의 38.5%가 선택했다. 불은 위로 오르려 하고 못은 아래로 처지려는 성향을 가진 것처럼 서로 이반(離反)하고 분열한다는 의미다.
최근의 부처 개편 논의가 그런 양상이 아닐까. 상황은 다르지만 부처 간 이해가 엇갈리면서 개편 논의가 더욱 불을 뿜는다. 역대 정권 말 풍경치곤 색다르고 강도도 세진 느낌이다.
끝은 어디일까. 논쟁의 끝이 보이는가 했는데 또다시 시작이다. 정부 주변 인사들과 산하 기관 및 단체에서 간간이 논의되던 정보통신기술(ICT) 거버넌스 개편 논의가 국회로 확산됐다. 국회에서만 벌써 수차례 열렸다. 학계와 협회·단체로도 번졌다. `미래IT강국전국연합`처럼 교수 개개인의 차원을 떠나 학회와 이를 연합한 학회로 규모가 커지고 참여 인사들의 저변도 넓어졌다.
논쟁 자체가 춘추전국시대다. 그만큼 치열해졌다는 의미다. 먼저, 정부 부처 기능의 통합과 분리론을 두고 격론이다. 진흥 기능과 규제 기능을 통합했더니 규제 일변도로 변해 오히려 산업 발전을 저해했다고 하는가 하면, 정통부를 해체해 진흥 기능을 분산했더니 콘텐츠(C)-플랫폼(P)-네트워크(N)-디바이스(D) 생태계가 기능별로 분리돼 역시 자기완결적 생태계가 구축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팽팽하다.
그런가 하면 정치와 정책의 구분이 가능한지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방통위 체제가 대상이다. 방송이 정치의 도구로 활용되고 쟁점화하면서 정보통신이 정책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독임제 총괄기구 필요성 얘기다. 한쪽은 ICT 환경 변화 예측과 대응에 실패했고 정치적 영향으로 주요 의제가 방송에 집중되면서 정보통신 정책이 실종됐다고 말한다. 다른 한쪽은 C-P-N-D의 융합 추세가 가속화하고 있는데 굳이 총괄부처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비판과 대안, 반론과 재비판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국가경쟁력 저하 논쟁도 지속 제기되고 있다. ICT개발지수보고서, 이코노미스트의 한국 IT경쟁력, BSA IT경쟁력지수 등은 ICT 국가경쟁력이 지속 하락 또는 정체했다고 봤다. 다른 측에서는 오히려 여전히 높은 성장률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ICT 산업 진흥 및 전략 정책은 독임제 부처가 수행하고 방송과 통신 부문의 규제 분야는 독립된 위원회 조직이 수행하게 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방통위, 지경부, 행안부, 문화부로 진흥 기능을 분산했더니 업무 중복과 혼선 등으로 변화가 빠른 ICT산업 특성에 맞는 선제적 대응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지금 논의되고 있는 안은 어떤 것이 있는가. 먼저, ICT를 전담할 총괄부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방통위를 중심으로 진흥과 규제를 모으자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지경부 중심으로 산재된 ICT 진흥 기능을 모으자는 얘기도 있다. 아예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을 통합한 부처를 만들자는 얘기도 나왔다. 현 체제가 혼란을 줄이는 길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 맞을까. 장단점이 많은 만큼 보다 면밀한 분석과 설계가 필요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의 논의는 분위기나 정부 조직 재설계안 차원을 넘어 통섭의 혁신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 효율과 대국민 편익이 먼저임은 물론이다. 그만큼 국민의 뜻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논의는 상화하택처럼 치열하되 결정은 `하늘과 땅이 화합해 태평하다`는 천지교태(天地交泰)처럼 할 수는 없을까.
박승정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