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준비된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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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너무 모르고 했던 거라 속수무책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운영사 대표에게 당시 회사를 매각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투자자들이 다수 지분을 가지고 매각을 요구할 때 경영자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에 다니고 있거나 막 졸업한 시기에 창업하는 젊은이가 늘었다. 정부는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창업을 유도한다. 청년창업전용자금, 청년창업사관학교, 청년창업 지원용 모태펀드 등 정책을 펴는 한편 대통령까지 청년창업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창업을 독려했다.

벤처 1세대가 엔젤투자자로 나서면서 창업 환경도 좋아졌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여서 창업 동기도 충분하다. 성공한 기업가가 창업 멘토로 나서는 등 창업 흥행 시대다. 해외에서도 한국 스타트업 시장을 고려할 만큼 투자자금도 흘러넘친다. 생태계는 점점 틀을 갖춰 가고 있다. 하드웨어 면에서는 한국에 유례없이 강력한 인프라가 갖춰진 셈이다.

문제는 사람이다. 지금 대학생들이 자라온 2000년대는 대학 입시를 위한 사교육 열풍이 일어났던 때다. 오로지 명문대를 목표로 외길만 바라보며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던 학생들이 창업가 정신이나 회사 설립 절차, 투자 유치 방법, 회사 운영 노하우를 배웠을 리 만무하다. 최근에야 대학들이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캠퍼스CEO` 과정을 신설, 창업 교육을 실시한다.

이처럼 사전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창업한 스타트업 대표들은 투자를 빙자한 `블랙엔젤`의 손쉬운 먹잇감이다. 기술 창업을 한다면서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특허권 문제조차 생각하지 않는다면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지불할 수도 있다.

흔히 스타트업에는 `맨 땅에 헤딩`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한다. 불모지에서 혁신을 이뤄내려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무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투자받는 방법은 조금만 품을 들이면 알 수 있다. 특허나 법률문제도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많다. 한 창업 교육 전문가는 “창업한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사업을 운영하는 데 아주 기초적인 내용도 모르는 때가 부지기수여서 한심하다”고 꼬집었다. 갓 태어난 아기도 걸음마를 떼기 전에 땅을 짚거나 벽을 잡고 일어나는 등 충분히 준비한다. 창업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오은지 벤처과학부 onz@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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