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네시주의 헬스케어업체 방가드헬스시스템스는 올해 1억달러가량 IT 부문 예산을 책정했다. 진료 데이터를 단시간 내에 처리하는 기술이 필요해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을 물망에 올려놓고 저울질했다. 하지만 이 회사 최고정보기술책임자(CIO)인 스캇 브랑쉐뜨가 선택한 기업은 익스프로리스(Explorys)라는 스타트업이었다. 브랑쉐뜨는 “그간 IBM 등 큰 기업과 함께 일했지만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관리 비용도 저렴하고 빠른 스타트업을 선호하게 됐다”고 밝혔다.
미국 IT 시장에서 IBM, 오라클 등 기업용 솔루션 전문업체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이들 간 소송이 잇따라 고객 불안감을 증폭시키는데다 새로운 스타트업이 속속 생겨나면서 낮은 가격 대비 높은 기술력으로 공세를 펼치고 있어서다.
27일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최고정보기술책임자(CIO)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들이 기업용 솔루션 업체를 `보다 작은` 곳으로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앞에서 언급한 방가드헬스시스템스 CIO뿐만이 아니다. 구직컨설팅회사 하비내시그룹에서 미국 내 100대 기업 CIO를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의 73%가 새로운 업체와 일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으며 기존 업체를 고집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수혜를 본 기업은 스플렁크와 팔로알토네트웍스다. 이들 작은 스타트업의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빠른 의사결정이다. 회사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의사 결정권자까지 올라가는 결제 서류가 적어 고객 요구에 빠르게 응대할 수 있다. 그만큼 제품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쉽다.
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컴퓨팅이 대세로 떠오른 점도 한 몫 한다. 무거운 하드웨어 장비가 없어도 인터넷만 연결되면 소프트웨어 기술력으로 커버가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 서버, 스토리지 업체인 IBM, HP, 오라클 등의 역할이 줄어든 것. 정유업체 글로벌파트너스의 켄 피딩턴 CIO는 “대기업에게 전산을 맡겼더니 불만족스러운 점이 늘었다”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스타트업보다 20%가량 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업체를 바꾸지 않고 기존 대기업 시스템에 스타트업 제품을 `얹는` 형태의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들도 속속 생기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마케팅업체 드리덴트마케팅의 브랜든 브라운 CIO는 최근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인 퍼지로직에서 분석소프트웨어와 코디네이티드시스템즈의 전화모니터링 분석툴을 사서 기존 시스템에 사용했다. 그는 “최소 50만달러 이상을 아꼈다”고 말했다.
기존 업체들은 쇄신 중이다. MS는 지난 7월 12억달러를 들여 기업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 야머를 인수했으며 IBM과 오라클, SAP는 조금 더 저렴한 온라인 브랜드를 론칭하기 위해 몇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HP 고위 관계자는 “연말 경 3개의 깜짝 놀랄만한 사업을 진행할 것이며 이 중 하나는 기업용 제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