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가전유통시장의 롯데발 빅뱅

2012년 가전유통시장 화두는 단연 롯데다. 찻잔 속 태풍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가전유통 신화를 일군 하이마트와 유통업계 절대 지존 롯데의 존재감은 너무 크다.

1990년대 말 일본 모델을 벤치마킹한 혼매 가전양판점 하이마트의 등장은 한국 가전유통시장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당시는 삼성·LG를 중심으로 가전제조업 대리점 위주 유통체계가 확립됐다. 한 장소에서 비교 구매가 가능한 곳으로 집적 전자상가가 있었지만, 전국 단위 직영점을 확보한 하이마트와 규모와 단위가 달랐다. 하이마트는 단숨에 유통 매출에서 삼성, LG 직영유통점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1999년 대우가 부실채권으로 힘들어지면서 출범하게 된 하이마트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제조사가 주도하던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 가전제품이 있었다. 수입선다변화제도 폐지로 일본 가전업체의 한국 진출이 이어졌다. 혼매점 하이마트는 그 상황을 제품 조달에 유리한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이마트는 이렇게 한국 가전유통시장에 가전양판점 모델을 뿌리내렸다.

하이마트의 선전은 여기까지였다. 야마다전기를 비롯한 가전양판점이 시장을 쥐고 흔드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삼성·LG를 두 축으로 제조사 파워가 작동하는 시장이다. 이는 하이마트로서도 현실적으로 넘어설 수 있는 벽이 아니기에 암묵적 카르텔이 형성됐다.

하이마트를 품게 된 롯데의 생각은 지금까지의 하이마트와 다르다. 롯데는 비상 경영을 선언한 뒤 곧바로 하이마트를 인수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가전양판점의 시장성에 확신을 가졌다는 방증이다. 이참에 한국 가전유통시장을 일본 같은 양판점 주도 시장으로 바꿔보려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일본에서 제조사 직영대리점이 사라지고 양판점이 주도해 가게 된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롯데기 때문이다.

시장 상황도 `꽃놀이패`다. 일본을 비롯한 해외 제품 선택에서 입지가 크고, 특히 백색가전에서는 중국 저가제품이 언제든 삼성·LG의 보급형 제품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삼성·LG 등 제조사와 줄다리기 과정에서 쓸 수 있는 무기가 널린 셈이다. 물론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롯데로서도 삼성·LG 견제를 위한 외산 제품 확대는 쉽게 선택할 카드는 아니다. 또 가전유통시장은 이제 가격만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자칫 외산 싸구려는 가전양판점, 고급은 직영점이라는 이미지가 고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여름, 가전유통시장은 롯데발 열풍을 가늠하기에 여념이 없다.


심규호 전자산업부장 khs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