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세의 나이로 `씨감자의 전설`이 된 정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은 국내에 몇 안 되는 `진정한 과학자`라 불린다. 정 원장은 생명 공학 분야에 `발자국`을 남기고 떠났고 이는 이제 길 잃은 다른 이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세계 식량난 `씨감자`로 해결=정 원장이 `씨감자`에 집착하게 된 것은 서울대 대학원에서 식물세포 조직배양을 전공한 게 계기였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설 유전공학연구소에 들어가면서 감자연구에 매달렸다. 그린바이오연구센터 전재홍 박사는 “정 원장께선 늘 쌀과 밀, 옥수수와 함께 감자는 4대 식량 작물이라며 재배도 쉽고 수확량도 많아 세계 식량난을 해결할 밑거름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6년 만에 주먹 만한 씨감자를 콩알만 한 크기로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 인공씨감자의 핵심은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없애기 위해 무균상태에서 배양하는 것과 공간 활용의 극대화에 의한 대량생산이 핵심이다. 기존 재배방법보다 30%가량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세계 각국 특허도 32개나 받았다. 대산농촌문화대상, 대한민국 특허기술대상, 중국 돈황상, 과학기술훈장 진보장 등도 수상했다.
그러나 상용화 과정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1998년엔 미원 계열 대상하이디어가 제주도에 200억원을 들여 제주도에 세계 최대 인공 씨감자 생산 공장을 설립했지만, IMF 외환 위기로 문을 닫아야 했다. 캐나다 펜 바이오텍에 기술을 수출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얻지 못했다.
◇“연구 창의성은 현장에서 나온다”=정 원장이 지난 해 5월 취임하며 강조했던 “연구자의 물 묻은 손에서 연구의 창의성이 나오고 부단한 시도만이 성공을 담보한다”고 언급했다. 정 원장은 취임 후에도 “연구자는 연구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며 새벽 4시에 연구실에 나타났다. 직원들이 출근할 땐, 이들이 미안해 할까봐 자리를 피해 조용히 연구소를 돌아봤다. 새벽에 청소하는 직원들과도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원장실로 향했다는 것이 주위 얘기다. 정 원장을 곁에서 지켜온 암바이오연구센터장 고정헌 박사의 회상 한 자락. “얼마 안 되는 액수지만, 인센티브가 나오면 나이 어린 비정규 연구원에 까지 나눠 줬습니다. 체육대회 때는 청소 아줌마 한분까지도 가족처럼 챙겼습니다. 1000여 명의 직원 모두가 큰 형님처럼 따랐습니다.” 정 원장이 주위로부터 늘 칭송받던 이유다. 기관장이 되어선 자신을 돌보기보다 기관 전체만 생각했다.
◇ 과학계 비통, 관행적 연구 풍토 없어져야 = 정 원장이 전설로 되면서 과학계도 비통한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행여나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바이오 분야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오히려 정 원장 죽음이 생명공학 분야가 다시 꽃피울 수 있는 불씨가 될 것으로 낙관한다. 생명공학 분야의 거목이 쓰려지면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과학계에서는 성과주의에 급급한 연구 풍토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구도 관리하고 투자도 받아야하는 풍토가 시급히 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955년생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및 동 대학원 석사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박사(원예학 전공) △ KIST 부설 유전공학연구소 식물세포연구실장 △ 〃 생명공학연구소 생물자원그룹장 △생명공학연구소 식물세포공학연구실장 △교육과학기술부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장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해외생물소재허브센터장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 △수상/농업과학상, 과기처 우수연구원상, 대산농촌문화상, 대한민국 특허기술대상, 중국 간쑤성 돈황상, 과학기술훈장 진보장 등.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